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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항쟁 특집: 맛보기 02

영화 <서울의 봄>과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전두환이 주도한 12·12 군사반란을 다루었다. 이 영화는 총관객수 1300만 명이 넘는 등 흥행에 성공했고, 올해 백상예술대상을 받았고, 영화 부문 작품상과 남자 최우수 연기상도 석권, 3관왕에 올랐다.   영화 <서울의 봄>과 12·12 군사반란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사진 출처_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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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울의 봄>의 등장인물과 실제 인물
전두광(황정민 분) -------->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이태신(정우성 분) -------->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상호(이성민 분) -------->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노태건(박해준 분) --------> 노태우 제9보병사단장
김준엽(김성균 분) -------->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최한규(정동환 분) --------> 최규하 대통령
오국상(김의성 분) --------> 노재현 국방부 장관

 

Q 영화 제목이 왜 ‘서울의 봄’인가요?

박정희 암살사건이 일어난 1979년 10월 26일 이후부터 1980년 5월 17일 사이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박정희가 죽고 종신 집권체제인 유신체제가 무너지자, 유신헌법을 개정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기대가 매우 높았어요. 하지만 곧이어 전두환과 신군부가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잡았고, 이들은 과거 유신체제 때처럼 새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민주화 세력이 저항했는데, 그 절정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열린 신군부 성토 집회였습니다. 이 집회에는 무려 10만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고, 남대문을 향해 행진하다 자진해산했는데, 이를  ‘서울역 회군’이라고 합니다. 신군부는 이를 기회로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서울의 봄’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1]’에 비유한 말입니다. 긴 겨울을 보내고 맞은, 너무 짧은 봄입니다.

Q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 ‘하나회’가 주축이 돼 반란을 일으켜요. 12·12 군사쿠데타는 신군부 세력이 주도했다고 하던데 하나회가 신군부 세력인가요?

맞아요. 하나회(壹會, 一會), 또는 일심회(一心會), 신군부(新軍部) 모두 같은 말입니다. 신군부는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구군부와 구분하기 위한 말입니다. 하나회는 전두환, 정호영, 노태우, 김복동 등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한 군대 내 불법 사조직이에요. 처음엔 오성회였고, 1961년에는 칠성회였는데, 이 조직이 하나회로 재편됩니다. 이들은 5·16 군사정변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고, 박정희의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유신체제의 주요 세력이었어요.  

영화에서 불안해하는 하나회 선후배에게 전두광(전두환)이 핏대를 올리며 ‘5·16혁명’에 대해 떠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군이 반란해 정부의 통치권을 장악하는 사건을 군사정변 혹은 쿠데타라고 하는데요, 박정희 집권기에는 5·16 군사정변을 ‘5·16혁명’이라고 했었지요. 반란에 승리해 권력을 쥔 자들은 자신들의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회는 친목모임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100명이 넘는 거대 사조직으로 발전했는데, 군 내부가 이를 묵인한 탓입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에야 해체됩니다.

Q 박정희가 죽고, 권력 공백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나요?  

1979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 안가에서 연회가 있었어요. 이 자리에서 중앙정부부장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권총으로 살해했어요. 김재규의 초청으로 안가 별채에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영화에서 정상호)이 대기하고 있었고요. 김재규가 왜 박정희를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궁금하면 따로 찾아보세요.

국가의 최고 권력 자리에 공백이 생기는 것은 국가적인 비상사태입니다. 사건 직후 최규하 국무총리를 비롯한 주요 각료들이 비상국무회의를 개최해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어요. 계엄사령관은 정승화입니다. 한편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최규하 총리는 11월 10일, 기존 유신헌법에 따라 일단 대통령을 선출하되, 잔여 임기를 채우지 않고 빠른 시일 안에 헌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발표했어요. 12월에 최규하는 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긴급조치 9호를 폐지하는 등 유신체제 해체를 위한 절차를 밟아 나가기 시작했어요.

긴급조치 9호
1975년 박정희가 유신헌법에 따라 발령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긴급조치 9호는 ‘헌법을 부정·반대·왜곡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선동하는 행위’ ‘학생의 집회·시위, 정치관여 행위’ ‘긴급조치를 비방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9호 위반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할 수 있다. 박정희는 정권을 비판한 사람들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체포,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Q 12·12 군사정변은 전두환이 주도했는데요, 전두환은 당시 어떤 일을 했나요?

전두환은 박정희 정권 초기부터 말기까지 탄탄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어요. 1979년 3월 보안사령관으로 발탁됩니다. 당시의 보안사령부는 정보 수집과 수사, 방첩 임무를 모두 수행하기 때문에 정보가 광범위하게 집결돼 보안사령관은 대통령에게 일대일로 보고할 수 있었습니다. 직제로 보면 국방부 장관의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장관도 보안사를 통제하기 어려웠습니다. 군이 이 정도의 권한을 손에 쥔 조직은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전두환 보안사령부는 1970년 10월 부마항쟁 때 정계, 학계, 종교계, 학생사회 등을 광범위하게 불법사찰한 정황이 확인됐어요.

영화에서 전두광이 기세를 떨친 것은 신군부라는 사조직 덕도 있지만, 그가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정희 암살 사건에 정상호(정승화 육군참모총장)가 개입된 것으로 조작해 그를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정승화는 장태완(정우성 분) 소장과 함께 고문을 받았고 군법회의에 회부돼 내란방조미수죄로 10년형을 선고받습니다.

보안사는 나중에 기무사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여전히 사회 안팎의 불법 사찰을 계속해왔고, 1990년 보안사 소속 윤석양 이병이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의 주요 정치인을 비롯한 민간인 130여 명에 대한 사찰 자료를 갖고 탈영해 이를 폭로했어요. 기무사는 2018년 문재인 정부 때 해체됩니다.

Q 영화에서 군사반란에 끝까지 맞섰던 인물로 나오는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 공수혁 특전사령관, 김준엽 육군본부 헌병감은 각각 실제인물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를 모티브로 했는데요, 이 실제 인물들은 12·12 군사반란 후 어떻게 됐나요?

영화는 군대 조직들끼리 대규모 총격이 일어날 듯 묘사했지만, 12·12 군사반란 때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3명이고, 사상자가 몇십 명이라고 하는데, 믿을 만한 정보인지는 잘 모릅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엄청난 사상자가 난 것처럼 연출했지요. 사상자 수가 크지 않다고 해서 반란 과정이 무자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반란에 맞섰던 이들은 가혹한 비극을 맞이합니다. 장태완 사령관의 아버지는 아들의 처지를 비관해 곡기를 끊고 술만 마시다 1980년 세상을 떠났는데, 2년 후 산소 옆에서 장태완의 아들이 변사체로 발견되었지요.

정병주는 1988년 경기도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의문사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김진기는 자진 예편해 군을 떠나 조용히 살다가 김영삼 정부 때 한국토지 공사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날의 반란은 5·17 쿠데타[2], 1980년 광주학살로 이어졌으니, 12·12는 더 큰 참극의 서막이라고 볼 수 있어요.    


1987년 6월항쟁
그 뜨거웠던 날들
맛보기 01: 우리나라 민주주의, 어떻게 발전해왔나
맛보기 02: 영화 <서울의 봄>과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 키워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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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1987년 6월항쟁: 마침내, 민주주의 함성이, 터져올랐다
06 편집실에서, 6월항쟁 특집에 대한 여운
특집 인터뷰:경희대 미래문명원 안병진 교수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닌, 부단히 만들어가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