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이니. <삼체>는 지구라는 행성[1]에 살아가는 우리들 스스로 계속 이 질문을 하게 만드는 드라마로, 외계인과 지구인과의 교신,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과 함께, 외계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지구인의 고군분투 등을 다룬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면 <삼체>가 기존 SF물과 비교해 뭐가 새로운지 알 수 없다. <삼체>의 독특한 혹은 차별적 매력은 지구와 교신하는 드라마 속 외계인(삼체인)이 지구인과 달리 항성이 세 개인 항성계의 행성에 산다는 점이 아닐까. 우주에는 무수한 항성(별)이 있지만, 지구라는 행성에 유의미한 작용을 하는 항성은 태양 하나다. 그러나 삼체인은 태양과 같은 항성이, 무려 세 개인 항성계에 살고 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자.
드라마 원제는 ‘Three body problem’(삼체 문제). ‘삼체 문제’는 뉴턴 역학에 근거한 것으로 현대에도 여전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유명한 물리학 담론이다. 삼체 문제란 질량을 가진 세 개의 물체가 만유인력의 법칙 등에 따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운동을 정량적으로(수치로) 풀기 어려운 문제란 뜻이다. 질량을 가진 두 개의 물체가 운동하는 모습은 두 물체 간에 상호작용하는 힘만 고려하면 되므로 예측이 가능하다. 이 두 물체 간의 운동은 복잡하지 않아서 이미 중고등학교 물리 문제로 많이 출제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개의 물체에 한 개가 더해지면 물체 A와 B, B와 C, C와 A 이렇게 세 물체 사이에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힘의 관계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그 운동을 예측하기 어렵다.
드라마의 주요 인물 예원제가 교신한 삼체인은 앞에서 말했듯 항성이 세 개인 항성계에 살고 있는데, 거기에 삼체인이 사는 행성까지 있기 때문에 이들은 삼체가 아닌, ‘사체’의 움직임을 예측해야 한다. 항성이 태양 한 개인 지구에서는 태양과 달의 주기를 계산할 수 있었고, 인류는 이를 토대로 눈부신 문명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삼체인은 항성이 세 개라 이런 예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들 행성에서는 항세기와 난세기로 시기를 구분한다. 생명체가 살 만한 시기(기후)가 항세기이고, 그렇지 않은 시기가 난세기다.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난세기에는 당연히 문명을 일구기 어렵기 때문에 항세기에 발전시킨 문명이 난세기에 발전을 멈추거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삼체계에 사는 삼체인의 문명 발전 속도가 지구에 비해 더딘 이유다. 이것이 <삼체> 이야기 전개의 주요 배경이다.
드라마는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의 폭압적인 인민재판 현장에서 시작한다. 칭화대 이론물리학 교수 예저타이가 인민 재판을 통해 공개처형을 당한다. 물리학은 정치적 이념이 아닌,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시공간, 에너지의 근원, 우주의 탄생에 대한 물리 이론을 가르친 점, 우주 탄생을 유물론적으로 봐야 하는지, 창조론으로 봐야 하는지 입장 표명을 분명히 하지 않은 점 등을 봤을 때 반동분자가 틀림없다는 이유였다.
성난 군중 속에 한 여성이 울부짖는다. 공개처형된 예저타이 교수의 딸 예원제다. 예원제도 벌목장에서 혹독한 노역을 하다 뛰어난 물리학 지식 덕분에 중국의 기밀 프로젝트에 스카우트되어 흥안관측소에서 일한다. 그곳에서 예원제는 삼체인과 교신하게 된다. 삼체인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보낸다.
“우리에게 답신하지 말라, 계속 연락하면 너희 세계를 점령할 것이다.”
예원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인류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으며, 외계의 구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삼체인과 계속 교신을 한다. 삼체인은 교신을 통해 지구의 위치를 파악 후 지구 침략계획을 세운다.
삼체인은 빛의 속도의 약 10분의 1 정도의 0속도(지금 현재 지구인은 상상도 못하는 빠른 속도)로 올 수 있기 때문에 지구까지 오는 데 약 400년이 걸린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갈 수 있는 거리이므로, 삼체인의 행성과 지구의 거리는 40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 어떻게 해서든 지구는 삼체인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400년 안에 지구의 문명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삼체 문명은 난세기 때마다 리셋돼 발전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지구 문명보다 훨씬 발전한 것으로 설정돼 있다. 삼체 문명이 지구 문명에 비해서 훨씬 오래 전부터 발전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삼체인은 400년 후 지구 문명이 자신들보다 앞설 것으로 예상하고, 지구의 문명 발전을 방해하기 위해 양성자 컴퓨터 두 대를 보내 인류를 감시하고, 문명 발전을 훼방놓는다.
삼체인이 인류를 감시하고 문명의 발전을 훼방놓는다고? 오는 데만 400년이 걸리는데 대체 어떻게?
자역학의 중요한 현상인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란 개념을 끌어온다. 양자얽힘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입자 중 한 개의 상태가 결정되면 다른 입자의 상태도 결정되는 동기화 현상을 뜻한다. 삼체인은 자신들은 빛의 속도로 이동하지 못하지만 양성자는 빛의 속도로 보낼 수 있다는 점(현재 우리의 과학기술에 따르더라도 입자가속기를 통해서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이르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을 이용한다. 우선 빛의 속도로 양자얽힘 상태에 있는 양성자 컴퓨터 중 한 대를 지구에 보낸 후, 다른 한 대의 양성자 컴퓨터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이 양성자 컴퓨터가 바로 인간을 감시하는 ‘지자(Sophon)’다. 지자는 인간의 모든 상황을 삼체인에게 보고한다.
지자는 11차원의 세상을 4차원, 3차원, 그리고 2차원으로 변형시켜서 인간 앞에 나선다. 물리학을 잘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이 11차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체감하기란 불가능하다.
큰 판자 위를 기어가는 벌레에게 세계는 2차원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 판자가 3차원의 육면체이며 벌레가 육면체 중 한 면을 직진하고 있다고 해도 이 벌레는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이라 착각한다. 이 예시는 시공간이 4차원(공간의 3차원과 시간의 1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끈이론에 따라 이 세상이 4차원을 넘어 11차원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할 때 많이 사용한다. 인간 역시 판자 위의 벌레처럼 11차원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다. 삼체인이 인간에게 던진 ‘너희는 벌레다’라는 메시지는 제법 의미심장하다.
신과 인간, 인간과 외계인(삼체인). 광활한 우주에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온 우주가 자신들의 것인 듯 살아간다. 과연 그럴까?
<삼체>에서는 신과 인간, 인간과 삼체인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말한다. 예원제는 면벽자(Wallfacer)의 지위에 있는 사울을 만나서 이런 농담을 한다.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아인슈타인이(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을 연주한 예술가였다) 죽어서 천국에 갔어. 천국에서 본인의 연주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무척 궁금했지. 하지만 천사들은 신이 색소폰 연주자이니 바이올린 연주를 하지 말라고 말렸어.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신의 색소폰 연주소리를 듣고 신과 함께 합주를 하고 싶다며 바이올린을 연주해. 그러자 신이 나타나서 아인슈타인의 X알을 뻥 찼고 바이올린도 박살 내버렸어. 아인슈타인에게 천국이 지옥이 돼버렸어. 이때 천사가 나타나서 말해. ‘우리가 경고했잖나. 신의 연주에 끼지 말라니까(Never play with god).’”
이 농담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들어 있다. 지구인이 최고의 천재라 여기는 아인슈타인은 상대적으로 덜 고도화된 종족을 말하고, 신은 고도화된 종족, 또는 문언 그대로 신적 영역의 존재를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은 덜 고도화된 종족이 낙관적인 판단을 통해 본인의 존재(예원제와 같이)를 고도화된 종족(예원제가 신으로 모시는 삼체인과 같이)에게 알리는 것을 의미한다. 본인의 존재를 알린 후에 평화로운 합주를 하지 못하고 X알을 차이는 것은 덜 고도화된 종족의 의도와 관계 없이 나쁜 결말이 발생하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400년 후 지구 문명이 삼체 문명보다 발전해 있을 경우 삼체인이 지구인에게 노출된 이상 400년 후에는 이 관계가 역전될 것이다.)
이 비유는 인간과 신, 더 또는 덜 고도화된 문명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사실은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삼체>에는 세 권의 책 얘기가 나온다. 《침묵의 봄》과 《게임이론》, 《페르미 역설》이다. 《침묵의 봄》은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이 1962년에 출간한 책이다. 이 책에서 카슨은 인간에게 해로운 곤충을 박멸함으로써 인간을 이롭게 할 것이라고 판단한 살충제 DDT가 인간에게 해로운 곤충뿐만 아니라 이로운 곤충까지도 박멸해 결과적으로 나쁜 영향을 초래했다고 말한다. 삼체인이 인간을 벌레에 빗댄 것을 생각해 보면, 인간이 세상에 이로운 존재인지, 해로운 존재인지와 관계 없이 외부의 존재로 인해 박멸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지구인은 이성적이고 물리학적 접근을 통해서 끊임없이 삼체에 대응하고자 노력한다. 지구를 침략하려는 삼체인에게 맞서기 위해 삼체함대에 정찰용 탐사정을 보내려는 계단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만, 실패로 끝난다. 지구인이 자연에 굴복하는 절망적인 장면이다.
형사 클래런스는 계단 프로젝트의 실패로 좌절한 진과 사울을 데리고 벌레가 가득한 습지로 가서 말한다.
“사람들은 벌레를 싫어하고 벌레를 영원히 없애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요. 이놈들은 죽지 않아요.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고요. 이제 돌아가죠. 우린 할 일이 많아요.”
지구인은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 속에서 벌레에 불과하다. 그러나 외계인이, 신이, 그 누군가가 벌레를 싫어하고 없애려고 하더라도 지구인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박멸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지구인은 광활한 우주 속 작은 벌레에 불과하더라도 이 순간 할 일이 많고 당장 내일 죽더라도 우리는 삶의 가치를 느끼며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삼체>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조금 진부한 말이지만.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의 이 말이 <삼체>의 스포일러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