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의 역사와 낙태죄, 낙태와 관련한 다양한 사례들에 대해 읽다보면, 인간의 논리란 아무리 이성적으로 보여도 얼마나 모순투성이며 본질을 가리는 가림막 구실을 하는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 진리란 무엇인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국가가 낙태를 처벌하기 시작한 것은 신 중심의 기독교 사회였던 중세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중세 교회법에서는 ‘임신 10주 이내에 인간의 영혼이 태아 속에 들어가므로, 그 이후부터 태아를 살해하는 것은 사람을 살해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1352년 신성로마제국의 카롤리나 형법은 태아를 ‘생명 있는 태아’와 ‘생명 없는 태아’로 구별해, ‘생명 있는 태아’를 낙태하면 살인죄로 처벌했다.
‘생명은 신이 준 고귀한 것으로, 낙태는 인간의 생명을 살해하는 일이므로 낙태는 죄이고,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
낙태 반대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여기서 출발한다. 인간의 생명을 신이 내렸느냐의 여부는 종교적 판단에 따른 것이니 잠시 접어두자. 그 다음 이어진 문장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생명이 가장 근원적인 가치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았고, 자연히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낙태를 금하는 것은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낙태에 관련한 법이 제정되면서 초기 기독교의 완고함은 한발 물러서고, 태아의 발달 과정을 고려해 어떤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낙태를 허용할지를 정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언제부터 태아를 인간으로 볼 것인지를 생물학적인 근거로 따져서 정하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일까? “태생학에 의하면 태아는 수태의 순간부터 독특한 유전인자를 가진 생명이며 따라서 인격을 갖춘 인간”이라는 주장에 논리적으로 맞서기란 불가능하다. 이는 생명공학 문제와도 매우 밀접히 연결돼 있다. 따라서 ‘나와 우리’의 삶의 현실성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는 한, ‘낙태는 어떤 이유에서든 태아의 생명권을 빼앗는 행위이며, 자신을 위해 낙태를 하는 여성은 이기적’이라는 데 동조하기 쉽다.
생명 존중 사상을 절대적 가치로 보고 있지만, 인간의 실제 행위는 이 보편적인 진리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중세 시대에도 암암리에 낙태와 관련한 민간요법과 안내서가 유통되었고, 심지어 영아살해도 비일비재했다. 갓 태어난 아이를 길거리나 교회, 수도원의 문앞에 버렸고, 이 아이들은 거의 사망했다. 기독교적 윤리, 보편적 진리는 하늘 위에 있었고, 땅 위에서는 수많은 영아들이 살해당했으며, 신의 눈을 피해 행해진 위험한 낙태로 수많은 여성의 생명도 함께 사라졌다.
중세 이후 낙태를 둘러싼 철학적, 신학적 논쟁이 계속됐지만, 여전히 낙태는 시행되었다. 중세를 거쳐 근세[1]에도 마찬가지였다. 낙태는 불법이고, 수치스러운 일로 쉬쉬했지만, 근절되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신문에 여성 생식기 질환 치료약 광고가 실렸는데, 이중엔 낙태약도 있었다. 우편으로 약을 주문하거나 약사에게 살 수 있었지만,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가난한 이들은 항간의 비법에 따라 낙태약을 만들었는데, 약초혼합물이나 세탁용 소다, 테레빈유, 심지어는 화학물질인 유약이나 진에 화약을 탄 물질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18》 발췌 요약)
낙태와 낙태하는 여성을 죄악시하는 풍조는 계속됐지만, 1800년 이전까지 태아의 움직임을 인식하기 이전의 임신중절은 사회적으로 묵인되었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여러 나라가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1803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낙태금지법을 제정했고, 1810년 프랑스에서는 인공유산을 하는 본인이나 시술자 모두 5년에서 10년의 형을 살게 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국도 1868년까지 거의 모든 주가 낙태를 법으로 금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3년 제정된 형법에서 태아는 생명체이므로 태아를 낙태시키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으로 규정, 낙태 시술을 하는 사람이나 낙태한 사람 모두 처벌했다.
낙태의 쟁점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 간의 충돌이라고 볼 때, 낙태는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 충돌의 이면에는 현실이 있다. 낙태가 옳은지 그른지에 관계 없이 낙태가 필요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 진리와 현실 사이의 크나큰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