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질병에 자주 노심초사한다.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더 아프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원치 않은 임신을 했고, 낙태를 해야 하는 임부의 마음은 어떨까? 두려움이 파도처럼 덮쳐오지 않을까? 낙태는 윤리적 딜레마를 안고 있는 문제라 어쩔 수 없이 낙태를 결정한 여성의 마음속에는 불안한 죄의식도 무겁게 가라앉는다.
무엇보다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어디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낙태를 해야 하는지, 낙태의 부작용과 후유증은 없는지 믿고 상담할 곳도 마땅치 않다. 낙태에 대한 고민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신뢰할 만한 정보를 찾기도 쉽지 않다. 낙태 비용 또한 부담스럽다. 출산할 수 없는 임부에게는 의료적인 보호도, 심리적인 보호도 제공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저출산 현상을 감안하면, 기다리던 아이를 얻게 된 기쁨을 누리는 임부보다,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고민하는 임부가 훨씬 많을 것이다.
낙태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보여준 최악의 태도는 법은 있되, 법 집행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낙태 관련 법은 ‘사문화’ 상태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법과 현실의 이 같은 괴리는, 결과적으로 낙태와 관련한 모든 현실적인 문제와 사회적 비난을 ‘예기치 못한 임신’을 한 여성 개인에게 덮어씌운다. 출산 여부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생명 보호’라는 지켜지지 않는 보편적 진리를 앞세워 무시했고, 여성의 건강권은 함부로 취급되었다.
또 하나 짚어야 할 점이 있다. 임신은 여성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인데도, 상대 남성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가 함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1953년 낙태죄를 명시한 형법에서도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영역으로 확정, 낙태를 한 여성과 의사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상대 남성에게는 아무런 처벌도 의무도 없다. 남성에게 낙태 문제는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