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파기해 낙태권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보도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그 와중에 프랑스에서는 마치 쐬기를 박듯 세계 최초로 헌법에 ‘임신중단(임신중지, 임신중절)’의 자유를 명문화했다. 2024년 3월 4일, 프랑스 의회는 여성의 임신중단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승인했다(찬성 780표, 반대 72표). 프랑스의 임신중단 관련 법과 정책을 살펴보면, 꾸준히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보해 왔기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 그러나 헌법상 임신중단의 자유를 명문화한 것은 프랑스가 처음이고, 그만큼 상징적이다.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게 있다. 1992년에 프랑스는 ‘형법’을 개정하면서 ‘낙태(avortement)’라는 용어를 ‘임신중단(Interruption volontaire de grossesse, IVG)’이라는 용어로 변경, 부정적 의미, 범죄행위의 의미를 삭제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이러한 프랑스의 임신중단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부분 ‘낙태 자유’ ‘낙태권’ 등의 용어로 관련 기사를 다뤘다. 관련 기사 중에 낙태 대신 임신중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설명도 거의 없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낙태죄 위헌 판결로 법적 효력이 상실됐고, ‘여성의 요청에 따라 의사에 의한 임신중단 시술’이 가능해 보이지만, 관련 법 개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안전한 ‘임신중단’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임신중단을 위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고, 누구와 상담하고, 시술 기관이 어디며,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아무것도 마련돼 있지 않다. 건강보험은 기대조차 못하는데, 낙태 비용은 기준이 없고, 시술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의료적 문제에 대한 대처방법도 전혀 없다. 안전한 ‘임신중단’이란 이와 같은 내용들이 구체적인 법률로, 공식적인 국가 정책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2020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낙태약의 불법 온라인 판매는 2015년 12건에서 2019년 2365건으로 200배 가까이 폭증했다. 낙태 시술 여부, 기준, 주수, 비용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의사와 의료기관에 따라 모두 다르고, 시술 후 후유증과 합병증에 대한 대처와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한예나, 2021.5.22) _‘프랑스 임신중지 정책의 동향과 시사점’
낙태권과 관련해 프랑스의 사례를 들여다보니, 막연해 보였던 안전한 임신중단의 길이 조금 또렷해 보인다.
프랑스도 1970년 이전까지는 불법적인 임신중절 수술이 만연했다. 연간 1만 건 이상의 불법 시술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 여성들은 임신중단의 합법화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고, 1975년 임신중단을 선택할 자유를 법에 명시했고, 9차례 개정을 거치며 임신중단의 접근성을 확대해나갔다. 1979년에는 임신중지센터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임신중지 가능기간을 임신 12주까지 확대했으며, 미성년자의 임신중단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요건을 삭제해, 미성년자 임부도 임신중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2014년에는 임신 12주까지는 사유를 묻지 않고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그전까지는 임부가 ‘곤경에 처한 상황’임을 입증해야 했는데, ‘곤경에 처한 상황’이라는 문구를, ‘임신의 지속을 원하지 않는’으로 변경했다.
임신중단 방해를 처벌하는 법률도 통과됐다. 임신중단 방해란, 임신중지를 시행하는 기관이나 의료시설 접근을 방해하거나 의료진이나 임신중지를 받으러 온 임부에 대해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도록 압력, 위협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무엇보다 ‘2012년 사회보장에 대한 재정에 관한 법률’에서 방법에 상관없이 여성이 사회보장 시스템에 등록된 경우 임신중단 비용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의 임신중단의 자유는,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이를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기본권으로 보았다. 태아가 임신한 여성의 신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임신중단 허용 기간은 제한하고 있다.
‘임신중단을 상담할 센터가 있고(임신중지센터), 12주까지는 ‘임신의 지속을 원하지 않는’ 경우 임신중단의 자유가 있으며, 미성년자의 임신중단을 돕고, 의료보험에서 비용 전액을 부담한다’면 안전한 ‘임신중단’이 가능할 것 같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봤을 때 낙태가 피임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법과 국가 정책이 모른 척하는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낙태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낙태와 관련해 법과 정책을 세워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보호한다고 해서, 낙태율이 높아지거나 생명을 경시하는 사상이 만연할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를 뒷받침해줄 근거가 미약하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 임신에 대해 사려깊게 판단해 낙태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봤을 때 가능해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