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과 7월이면 전 세계에서 ‘퀴어 페스티벌’이 열린다. 우리나라도 서울이나 대구 등 큰 도시에서 퀴어 축제를 개최한다.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소외된 성소수자들은 이 축제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에 자긍심을 갖는, 소중한 경험을 즐겁게 나눈다. 이 축제에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앨라이(Ally : 지지자, 협력자들)도 함께 참여한다.
그러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어김없이 ‘반대 집회’도 열린다. 종교적 신념 혹은 교육적으로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기독교계·학부모단체 등이 주체가 된 반대집회에서는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자연스럽다’ ‘동성애는 치료 가능하다’ 등의 피켓들도 등장한다. ‘기다릴게요. 사랑합니다. 돌아오세요, 정상으로’라고 적힌 피켓도 있다.
20세기까지 ‘퀴어’는 동성애자를 비하하거나 경멸할 때 사용했지만, 현재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단어로 쓰인다. 레즈비언과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스(남성과 여성으로 분류할 수 없는 성징을 지닌 다양한 사람을 일컫는 말), 무성애자 등을 두루 일컫는다. 퀴어 중에 게이와 레즈비언은 같은 젠더(gender, 성별)에 끌리는 성향을 가진 동성애자를 말한다.
2017년 4월 25일 대선 후보 TV 토론회로 잠시 돌아가보겠다. 이날 홍준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토
론을 벌였다.
홍준표: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문재인: “그럼요.”
홍준표: “아니 합법화가 아니고, 분명히 동성애 반대하는 것이죠?”
문재인: “저는 뭐 좋아하지 않습니다.”
홍준표: “좋아하는 게 아니고 찬성이냐 반대냐 물어봤는데.”
문재인: “합법화 찬성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곧 ‘동성애 반대’가 아니고 ‘동성애 합법화’ 반대라고 의사를 밝혔지만,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동성애 반대’라는 취지를 담고 있어서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분노했다. 동성애 반대와 동성애 합법화 반대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동성애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라는 물음을 퀴어 페스티벌에서 반대집회 참석자에게 던진다면 이들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같은 질문을 퀴어 페스티벌 참가자에게 던진다면?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며 일축(一蹴)[1]할 것이다. 왜? 동성애는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결혼을 합법화(동성결혼 법제화)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는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지만.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의미는 뭘까? 동성애는 ‘고칠 수 있는 병’으로 보고 격리라도 할 생각일까? 문재인 후보는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말은 뒤집어서 보면 동성애자를 싫어한다는 말이 된다. 동성애자라고 해서 미움의 대상, 증오의 대상,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같은 젠더(생물학적 성별)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동성애자들은 오랜 역사 동안 참혹한 형벌을 받아왔다. 14세기 서유럽 국가 대부분은 동성애를 소도미 범죄(sodomy crime)라고 규정하고 화형에 처했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13개 주에서도 1775년 독립전쟁 전까지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했다. 잉글랜드 웨일스에서는 1861년 동성애에 대한 처벌을 사형 대신 징역으로 바꾸었다. 기독교 중심의 서양에서 동성애는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성애 금지법이 사문화(死文化)[2]된 것은 20세기 중반 무렵에 와서였고, 1970년경에야 폐지됐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펼쳐지면서 세계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핍박과 폭력이 반인권적인 차별임을 인정하고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데까지 왔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범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08년 2월 12일, 캘리포니아에서 열네 살 소년이 같은 학급의 친구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총으로 쏴서 살해했고, 2019년에는 영국 런던의 한 버스에서 십대 남학생 네 명이 레즈비언 커플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경찰에 따르면 2017~2018년 동성애 증오범죄 건수가 1만 1638건에 이른다.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동성애 혐오범죄가 일어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시선과 혐오로 고통받고 있는지 가늠이 된다.
…한 인간의 성적 지향은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이 합쳐져 하나의 지향을 이루게 됩니다. ‘성적 지향’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적, 정서적, 또는 성적 이끌림을 기술할 때 쓰는 개념입니다. 동성애가 됐든 이성애가 됐든 양성애가 됐든 성적 지향은 인간의 선천적인 성 정체성의 일환이지만, 한 개인이 ‘만족스럽고 충분히 낭만적인 관계를 찾을 수 있는 집단’ 속에서 나타나는 관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 인간의 성적 지향은 누가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지지한다고 해서 성적 지향이 더 확대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적 지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이재훈 기자가 과거 박원순 전 시장이 2014년 한 행사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그는 왼손잡이에 비유해 성적 지향성을 설명했다. 왼손잡이는 타고난 성향이며, 20세기 중반 한국사회에서 왼손잡이가 태어나면 억지로 오른손잡이를 만들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왼손잡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동성애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런 차별적 시선이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을 방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