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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톺아보기 06

조광조의 기묘사화

정치적 싸움으로 화를 입은 선비들

조선 중기,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은 조선의 통치체계와 국정 운영의 원리를 담아냈다. 하지만 이에 기반한 현실정치의 흐름은 또 다른 문제였다.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사화라는 정치적 사건이 연거푸 발생한다. 두 정치세력인 훈구파와 사림파가 어떻게 격돌했는지 ‘기묘사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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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구와 사림, 그리고 사화(士禍)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법전’인 《경국대전》은 조선 건국과 함께 시작한 대대적인 작업으로 수차례 개보수 작업을 거쳐 성종 재위 시기인 1485년에야 완성되었다. 조선은 어느덧 중기에 들어섰다. 조선은 왕조사회였지만, 그렇다고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통치구조가 아니었다. 왕을 견제하는 세력이 신하였는데, 신하의 구성은 조금 복잡했다. 크게 대신과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로 나뉘었는데, 삼사를 거쳐야 대신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삼사는 국정 운영에 대해 포괄적인 비판과 감찰을 담당했다. 통치원리를 《경국대전》에 담았지만 현실정치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삼사는 국왕과 대신과 갈등하고 긴장하는 역할을 했다. 사극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왕과 대신들을 비롯한 권력층의 힘겨루기는 조선시대 내내 계속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 사대부는 새로운 권력 지배층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조선 건국의 과정에서 공신으로 인정받고 부와 권력을 독점하였는데, 이들을 훈구파라고 부른다. 성종 때 훈구파는 중요 관직을 차지했으며, 급기야 왕권을 제약하는데 이르렀고, 성종은 이들을 견제하고자 사림 세력(사림파)을 중앙 정계에 등용했다. 사림 세력은 조선 건국 과정 때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온건파 사대부들로, 이들은 지방에 남아 향촌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중앙 정계에 진출한 이들을 사림파라 부른다.

사대부 중에서도 출신 배경과 학파의 구분에 따라 세력이 양분돼 있었는데 조선 초기만 해도 대립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종 이후 중앙권력을 독점해온 훈구파의 부패와 사회 모순이 커지면서 점차 대립이 격화되었다. 그 배경에는 15세기 말부터 농업생산력이 크게 높아져 지방에 뿌리를 두고 있던 사림들이 성장할 물질적 토대가 마련된 측면도 있었다.

성종 이후 국왕들은 중앙에서 점점 권력이 비대해져 가는 훈구파를 견제하고 상대적으로 왕권의 힘을 높이기 위해 사림의 등용을 적절히 활용했다. 훈구파를 견제하는 한편, 대지주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던 농민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훈구파와 사림파의 정치적 대립이 격돌했고, 4대 사화(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회)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