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할아버지’라는 말은 얼마나 친근한가. 한국인들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며,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고 말한다. 근데 정말 그럴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신화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거란, 몽골, 일본, 만주족 등과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이 과정에서 이민족과 토착민의 융합이 빈번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2017년) 한국인에 대한 유전적 정보가 나왔다. 울산과학기술원 게놈연구소와 영국·러시아·독일 등 국제연구팀이 두만강 위 러시아 극동지방의 ‘악마 문 동굴’에서 발견한 7700년 전 동아시아인의 게놈을 분석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한국인의 민족 기원을 가늠해보니, 수천년간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융합하면서 구성된 것으로 확인했다. 이중 한국인은 유목생활을 하는 북방계보다 정착농업을 하는 남방계 아시아인에 더 가깝다고 한다. ‘단일’한 민족이란 애초에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단일한’ 민족도 어렵지만, ‘민족’이란 개념도 매우 애매하다.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아니라고 느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추성훈은 한국계 일본인으로 일본에 귀화했다. 이름은 아키야마 요시히로다.
누가 우리 민족이고, 누가 우리 민족이 아닌지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까? 몇 가지 기준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핏줄을 근거로 삼는 근원주의’다. 이 기준으로 보면 일본인 아키야마 요시히로는 우리 민족이다. 하지만 ‘거위의 꿈’으로 유명한 가수 인순이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한국의 정서를 한국어로 노래하며, 우리와 함께 살아온 한국 국적의 한국인이지만 우리 민족이 아니다. 근원주의로 민족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불완전한지 알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핏줄로 민족을 판단하는 경향이 짙다. 단일민족이란 말 속에는 혈통의 순수성을 중요시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른 말로 ‘순혈주의’라고 하는데, 국어사전의 풀이를 보면, 순혈주의란 ‘순수한 혈통만을 선호하고 다른 종족의 피가 섞인 혈통은 배척하는 주의’라고 설명한다. 배척의 언어이며 차별의 언어이다. 또 하나,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모호하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도 민족을 구분하기 어려운 것은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민족을 ‘상상된 것’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한국사회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중요시한 이유에는 역사적 정당성이 있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때 일제는 조선의 모든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단재 신채호 등, 일군의 민족지도자들이 조선인의 자부심과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조선은 하나의 뿌리에서 태어난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조선 민족을 뭉치게 하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한국인=한민족’이라는 개념이 뿌리내리게 됐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사회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겪는다. 세계화와 더불어 국가간의 장벽이 많이 낮아졌고, 한국사회에도 이주민들의 유입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누가 우리 민족이고 누가 우리 민족이 아닌지 따져보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과거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이 단단한 결속력이 돼주었지만, 이제 우리 스스로 그 테두리를 걷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
2007년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사회가 단일민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가 민족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같은 영토 내에 사는 서로 다른 민족·국가 그룹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의(友誼)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또한 ‘순수혈통’ ‘혼혈’ 같은 말들 속에 인종적 우월주의 관념이 담겨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다인종적, 다문화적 가치를 위한 교육을 권고했다.
불과 반백 년 전만 해도 한국인에게 외국인, 특히 타 인종은 생소한 존재였다. 그러나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주민의 유입이 늘어났고, 그 결과 다양한 민족이 한국에 뿌리내리게 됐다. 2023년 기준 유학·취업·결혼이민과 같은 이유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총 250만 7584명으로, 전체 인구의 4.89%에 해당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국인 귀화자, 내국인 이민자 2세 및 외국인 인구를 합친 이주배경인구[1]가 총인구의 5%를 넘을 경우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한국이 다문화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한편 귀화를 하거나 한국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린 다문화가구는 41만 5584가구로 총가구의 약 2%에 해당한다. 100명 중 4명, 100가구 중 2가구이다. 한국이 다문화시대에 접어들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학교’다. 외국인 유입 증가와 한국의 저출산이 맞물리면서 학교 내 다문화 학생의 비율이 매해 높아지고 있다. 다문화 초등학생 비율이 10% 이상인 지자체는 총 10곳으로, 이 중 전남 함평군·경북 영양군·전남 신안군은 20%에 육박한다. 다문화 학생이 30% 이상인 초·중·고교는 전국 350곳에 달한다. 일부 학교의 경우 10명 중 무려 9명이 다문화 학생이다. 2023년 기준 다문화 학생 수는 18만 1178명인데, 이는 10년 전 5만 5780명과 비교해(2013년) 약 3배 증가한 수치다.
이주민 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남에 따라 한국사회는 인종, 종교, 언어, 문화 등 여러 부분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사회통합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다문화 인식과 수용성은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정적’이기까지 하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21년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성인의 다문화수용성[2] 지수는 52.27점에 불과하다. 청소년의 경우는 71.39점이다.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다문화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 적은 학교로 전학을 시키고, 다문화가족이 이웃으로 이사오면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꺼릴 정도다.
다문화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을 받아들이는 데 부정적이며, 심지어 혐오적이기까지 한 경우가 많다. 한국의 다문화 수용성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뭘까? 사회·문화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은 사안이라 쉽게 말하기 어렵지만, 역사적 출발점이 다른 것도 큰 이유다. 미국은 본래부터 ‘이민자들의 나라’였다. 미국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이민자이거나 이민자의 자손이라 전 세계에서 문화적, 인종적으로 가장 다양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인종이 ‘다른’ 이들과 살아온 역사 경험이 거의 없다.
다문화가정이 한국사회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1950년대에 와서였다. 6·25 전쟁을 계기로 미군과 한국 여성이 결혼해 다문화가정을 이뤘는데, 당시 이들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으며, 이를 소수의 특이 현상으로 취급했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일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다문화·다인종 경험도 별로 없고,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인권적 관점에서 올바른지에 대한 교육도 부족하고,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민자들을 대하는 미디어의 시각도 편향돼 있으니 국민의 다문화수용성이 높기 어렵다. 혐오가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이주민들은 소수로서 또 다른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르다’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일, 우리가 할 일,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인지 논의해보면 좋겠다. 출처-월간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