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2024년 1월 24일 공청회를 열어 대표 낙후지역인 세운상가 일대의 재개발 계획인 종묘-퇴계로 일대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서울 광화문-종각 일대 중심업무지구[1]의 확장을 가로막던 세운상가가 철거되고 10개 이상의 고층 오피스 빌딩과 1만 9569명을 수용 가능한 1만 1892가구의 아파트 및 주상복합이 들어서게 된다. 기존 계획(9900명, 4950가구)보다 두 배 이상 확대됐다. 세운상가를 비롯한 여러 상가가 남북으로 길게 들어선 자리에는 광화문광장 두 배 크기의 선형 녹지가 조성된다.
세운지구 내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은 전체의 97%에 달해 꾸준히 재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붕괴 위험이나 화재 등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도 57%에 이른다. 이들 건축물 중 40% 이상은 현 소방시설 기준을 만족하지 못 하고, 화재 시 소방차 진입에 필요한 최소 폭 6m를 확보하지 못한 도로도 65%다.
한편 세운지구는 길 건너에 보이는 세계문화유산 종묘와 170m 떨어져 있다. 이는 문화재위원회 심의 대상인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범위인 100m 밖이지만, 서울시 조례는 보존지역 밖이더라도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한 공사에 대해서는 문화재청과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청회에서는 문화재청의 높이 규제를 풀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 문화재와 주변 풍경이 어우러지는 스카이라인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계속 논의해왔다. 당초 문화재청이 허용한 높이는 종묘와 가장 가까운 2구역과 4구역의 경우 55m, 이외 청계천 일대는 71.9m다. 이 와중 중구청은 23년 5월 31일 용적률 1500%, 최고 높이 212m로 개발을 허용하는 내용의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결정안을 공람·공고[2]했다. 월간 <유레카> 2023년 5월호
서울시의 계획대로 세운지구를 고밀·복합 개발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역사경관이 심각하게 훼손될 거라는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습니다. 세운지구에 최고 200m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면,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120m가 종묘 시야에서 노출된다고 하는데요. 2010년 문화재위원회가 종묘의 역사성과 역사문화환경 보존을 위해 정한 높이 기준은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3개 층 이하’였습니다. 종묘를 둘러싼 숲으로 현대식 건물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개발만 허용해, 의례공간의 원형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였죠.
사실 세운지구 재개발과 문화재 보존을 둘러싼 공방은 하루이틀 일은 아닙니다. 이미 지난 2006년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지구)로 지정하고, 세운상가를 철거해 녹지축[3]을 만들고 주변 일대를 초고층 빌딩으로 둘러싸는 도심 재창조 계획을 발표한 바 있어요. 최고 높이 122.3m, 36층 건물 8동을 짓겠다는 계획이었는데 문화재위는 10여 차례 심의 끝에 세운 4구역의 122.3m 건물 높이 계획을 종로변 기준 52.6m로 낮췄어요.
이후에 박원순 시장은 이를 완화해, 세운 3구역 및 5구역을 문화재 심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최고 높이 90m까지 개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돌아온 오세훈 시장이 종묘 앞 세운지구 일대를 고밀·복합 개발하는 방안을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편 재개발은 종묘뿐 아니라 남산의 자연 경관도 훼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울시는 1994년에 남산의 제 모습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며 남산 자락에 있던 외인아파트를 1500억 원을 들여 폭파해 해체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30년 만에 만에 다시 남산 경관을 가로막는 건물을 허용하는 계획을 내놓은 셈이죠.
고밀·복합형 지구 : 주요 역세권, 간선도로의 교차지 등 양호한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용이한 지역으로서, 도심 내 소형주택의 공급 확대 및 토지의 고도이용과 건축물의 복합개발이 필요한 지구를 일컫는다.
지역 시민단체인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이러한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이 종묘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며 유네스코 본부에 실사 모니터링단 파견과 유산영향평가 실시를 요청하는 민원을 제출했습니다.
아울러 세계유산 경관이 고밀·개발로 훼손했다는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 중 김포 장릉은 인근의 아파트 개발로 이미 권위를 잃었고,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할 왕릉에서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파트가 훤히 조망된다.”고 지적했죠.
실제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의 경관을 저해하는 개발을 제지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영국 런던 시가 세계유산인 런던 타워 인근에 216m, 303m 높이의 건물을 신축하는 계획을 발표하자, 200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현지 실사단을 파견해 경관적 요소의 보호와 고층건물 신축에 대한 지침 마련을 요구했어요. 결국 런던 시는 건물 신축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비엔나 중앙역의 복합 고층 건물 신축 계획이 현지 실사단이 파견된 뒤 전면 수정된 바 있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세계문화유산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어요. 해양 무역 도시의 역사성을 평가받아 2004년 세계유산에 역사도시로 등재됐던 영국 리버풀은 항구 주변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으로 가치가 손상되자 2021년 지정이 취소됐습니다. 당시 유네스코는 “도심 재개발로 경관이 심하게 바뀌고 지역의 보편적 가치가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됐다”고 지정 취소 사유를 밝혔어요.
종묘(宗廟)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 종묘의 정전(正殿)은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창건 당시에는 정전만 있었으나, 세종대에 정전 옆에 새로운 별묘인 영년전을 지어, 현재는 정전과 영년전을 포함한 종묘영역 정체를 종묘라 부른다.
정전 건물 앞에는 ‘월대’라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얇은 돌을 쌓아 만든 단이 있다. 이중 아래쪽을 하월대, 위쪽을 상월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