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이라고 하면 ‘1884년, 김옥균과 박영효, 친일파, 3일천하’ 이 말밖에 생각이 안 나요. 한국사 공부하면서 슬쩍 지나간 사건인데 왜 갑신정변을 다루려고 하는 거죠?”
편집부 기자의 질문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왜 갑신정변을 다루려고 한 걸까? 이유는 많았는데 금세 답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정변을 모의했는지 궁금했다. 그들을 단순하게 친일세력 혹은 친일파라고만 평가하는 게 타당한지도. 정변이 실패하면 목숨을 잃을 것을 알고도 벌인 일이라면, 이들 개화기 지식인들이 왜 이토록 무모한 일을 벌였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한, 궁극적인 목표는 따로 있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유가 왕조 말기의 지배층이 너무 무능
해서라고 우리 스스로 평가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정말 우리는 조선의 개화기에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아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걸까? 거대한 황제의 나라 중국을 머리에 이고 있으면서도 수천년 동안 단 한번도 나라를 빼앗긴 적이 없었던 게 한반도의 역사다. 그런 우리가 어쩌다가 일본에 무릎을 꿇게 된 걸까?
이 비극적 결론 이전에 우리 안에서 꿈틀거렸던 움직임들에 대해 과연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모든 모순이 폭발하던 그 시기에 우리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점점 거세지는 서구열강의 압박, 청나라와 일본의 힘겨루기, 러시아와 미국, 영국까지도 조선을 손에 넣으려고 주시하고 있던 때, 조선은 봉건제의 모순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때의 우리 처지가 너무 안타까웠다.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왕조의 몰락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이어진 치욕의 역사 때문에 오랫동안 우리들 안에 도사린 패배주의만큼은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사진: 박영효, 서재필, 김옥균)
갑신정변(1884년)은 개화기의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개화기를 언제로 보느냐에 대해서 연구자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1870년대부터 1910년까지 대략 30~40년을 말한다. 이 시기 조선왕조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왕을 중심으로, 왕의 권력을 관료들이 견제하던 견고한 국가체제는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을 발전시키며 조선이라는 나라를 발전시켜나갔다. 하지만 중후반기 세도정치가 출현하면서 모든 시스템이 무너졌다. 마치 현대 한국의 국정농단 사태처럼 권세를 가진 가문이 권력을 휘둘렀고, 그 틈에 온갖 부정 부패가 난무해 백성들은 먹고 살기가 어려워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봉건적 모순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이때 일본은 1871년 폐번치현을 필두로 한 메이지유신을 단행, 근대화의 길을 앞서 걷기 시작해 서구열강의 영향 속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나라 역시 관료들의 주도로 양무운동[1]을 벌이며 근대화에 힘쓰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은 호시탐탐 조선의 침략을 노리고 있었고, 이 틈에 조선의 지배층도 일본파와 청나라파로 갈려 서로 으르렁거렸다.
결론적으로 조선은 제대로 자주적인 독립국가의 건설로 가는 개혁의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일본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 시기 우리 안에도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 지배세력이 한반도에 닥친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어지러운 사회 상황을 개혁하기 위한 움직임이 다양하게 일어났다.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동학혁명(1894년)이었다. 농민이 주축이 돼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부르지만,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올린 동학운동의 뿌리에는 조선 고유의, 독창적인 근대 사상을 담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었듯, 동학혁명은 큰 뜻을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
갑신정변은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10년 전의 사건으로, 외세의 침략이 한반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던 시절, 조선 봉건왕조의 모순이 폭발하던 시기 일군의 지식인들이 일으킨 정변이었다. 정변의 주도자들인 급진개화파는 어떻게 해서든 조선의 근대화를 이끌어내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갑신정변은 외적·내적 문제들이 치밀하게 얽혀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던 때였다. 갑신정변은 조선과 청나라, 일본의 역학관계가 고도로 밀착된 사건이다.
개화기 갑신정변이 일어날 때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찬찬이 짚어보았다. 처음에는 맛보기에서 갑신정변에 이르기까지 개화기에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려다, 그 과정 하나하나의 역사적 깊이가 커서 키워드리포트로 하나씩 풀어보았다. 갑신정변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뼈아픈 우리의 역사였다. 외세를 몰아내고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개혁의 바람이 불었지만, 근대화의 길을 먼저 걸은 청나라와 일본의 기세를 꺾기는 역부족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특집플러스에서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에 대해 살펴보았다. 일본이 조선을 빼앗을 수 있었던 저력이 메이지유신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강만길이 쓴 《한국근대사 산책 1》의 다음 구절이 마음에 크게 남아 적어본다.
실제로 개화기 역사를 읽다 보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진다. 동화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시 우리나라의 처지가 사나운 늑대 떼에게 포위된 한 소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안 듣고 위험한 곳으로 간 소년의 잘못에 대해 인과응보라고 말하기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년의 몸부림이 너무 눈물겹다. 그 소년은 나름대로 꾀를 내보기도 하지만 다 실패로 돌아가고 특히 늑대의 밥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