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메이지유신이 뭐예요?
교양이 제일 어려운 질문이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본 역사에서 봉건체제(막번체제)를 무너뜨리고 서구의 근대국가 체제를 받아들여서 새롭게 국가 체계를 세운 매우 큰 변혁의 시기를 말해. 대략 1850년대부터 1880년대 걸쳐 진행되었는데, 일본 천황인 메이지 천황 때에 일어난 일이라, 일련의 개혁 정책을 그의 연호를 따서 메이지유신이라고 부르게 되었어.(이와 관련해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할 거야). 메이지 천황의 연호인 1867년부터 1912년을 메이지 시대(明治時代)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일본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봉건적인 신분제도를 폐지하고, 산업화의 속도를 내는 등 급속한 근대화를 이뤘어.
하나 일본의 봉건체제요? 근대적인 국가체제 이전에 일본의 정치와 사회는 어떤 형태였어요?
교양이 일본의 봉건적인 정치체제는 중세 유럽 봉건제나 한국과 중국의 왕 중심의 정치체제와 좀 달라. 유럽의 봉건제는 영주와 농노로 이루어진 장원이 기본단위였고, 장원의 통치자는 영주(또는 기사)였지. 영주는 더 큰 대영주의 가신이고, 대영주는 더 높은 영주의 가신으로 이어져 결국엔 국왕이나 황제에게 권력이 집중되었어. 한국이나 중국은 왕이 지배하고, 그 아래 관리들이 왕을 보필하면서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고. 그런데 일본의 막번체제는 조금 달라. 천황은 상징적 존재로 거의 힘이 없었고, 막부가 중앙 집권적인 실질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어. 권력을 독점한 막부는 ‘번’이라는 분권적인 존재를 허용했는데, 그래서 ‘막번체제(幕藩體制)’라고 말해.
하나 막번체제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교양이 메이지유신에 대한 글이나 일본 역사를 공부할 때 처음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게 꽤 어려워. 막부와 번도 낯선 개념인데다가 에도, 도쿠가와, 쇼군 등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서 그래. 하나씩 설명해볼게. 먼저 사전에서는 막부(幕府, 일본어로는 바쿠후라고 함)를 ‘1192년에서 1868년까지 일본을 통치한 쇼군의 정부’라고 풀이해. 쇼군의 정부? …쇼군은 명목상으로는 천황의 신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소유한, 최고사령관을 뜻하는 정이대장군이라고도 해. 무사 세력의 우두머리, 최고사령관쯤으로 이해하면 돼.
막부 정권은 무사 정권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데, 막부가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가졌다고 보면 돼. 물론 이와 같은 의미의 ‘막부 정권’ 시대를 연 것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였어. 이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을걸. 도쿠가와는 에도(현재의 도쿄) 막부를 세웠고, 에도 막부가 1603년부터 1868년까지 일본을 통치했어. 에도 막부, 도쿠가와 막부, 에도 시대, 도쿠가와 시대가 다 같은 의미야.(▼ 도쿠가와 이에야스)

하나 쇼군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 있어요. 막부와 같은 뜻이었네요. 들어보니 확실히 좀 새롭긴 해요. ‘번’이라고 하면 맛있는 빵, 번이 떠올라요….
교양이 ‘번’이라고 하면 다들 그럴 것도 같아. 우리 말로 ‘번’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없기도 하고. 그럼 일본 역사에서 ‘번’이 무엇인지 알아볼까? 지배를 하거나 권력의 영향력이 행사되려면 그 대상이 되는 지역과 사람이 필요해. 이때의 사람은 그 지역에 속한 경우가 많고. 읍·면·도처럼 행정구역이 있는 이유는 지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였어. 막부 시대 이전에 일본의 행정구역의 기본은 쿠니(國)였어. 최대 66개 쿠니가 있었어. 지방행정의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지. 막부 시대에는 영주들이 설치한 행정구역 ‘번(藩, 일본어로 한)’이 그 역할을 했는데, 영주들이 설치한 ‘번’은 쿠니를 기본 경계로 삼은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번 이름도 쿠니에서 유래한 게 많아. 이처럼 번의 명칭이 지금 일본 도시 명칭으로 굳어진 경우도 많고. 에도 시대는 최대 영주인 도쿠가와 막부와 약 260개 내외의 번으로 이뤄져 막번체제라고 하는 거지.
하나 각각의 번을 모두 쇼군이 지배했나요?
교양이 그러긴 어렵지 않았을까? 번들은 대부분 한 가문(다이묘·大名)이 세습하면서 통치했어. 다이묘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도 있을 거야. 다이묘 아래 가신단과 영민(領民, 번의 백성들)이 있었어. 가신단의 충성 대상은 막부가 아니라 자기 번과 다이묘였어. 번은 규모가 크다고 해도 경기도만 한 면적에 인구 70만 정도였어. 일본의 백성들에게 ‘번’에 대한 충성심의 밀도는 매우 높은 편이었어. 꽤 독자적이었어. 번에 속한 사람들은 번주(영주 혹은 다이묘)의 허가 없이 번의 경계를 벗어날 수 없었고, 다른 번과 교역할 수도 없었어. 독립성도 있었고 권력도 있었지.
막부는 중앙정부로서 국방과 대외 무역을 독점했고, 한편으로 각각의 번의 기본적인 자치를 인정하는 한편 번에 대한 통제력 또한 강력했어. 어때? 막부와 번이 중심이 된 막번체제라는 말이 좀 이해가 되니? 에도 막부는 265년 동안 지속됐는데 일본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번영을 이룬 시기라고 평가해. 또한 이때 사회 안정을 위해 강력한 쇄국 정책을 펼쳤어.
하나 조선시대에도 쇄국정책을 폈는데, 막부도 쇄국정책을 폈군요?
교양이 교양이 중앙 집중적 막번체제가 정착되고, 신분제 또한 자리를 잡으면서 안정과 평화를 누리게 됐어. 더군다나 섬나라여서 상대적으로 중국의 압력이 덜했지. 에도 막부는 몇 차례에 걸쳐 쇄국(海禁이라고도 부름. 바다로 나가는 것을 금한다는 뜻) 정책을 취했는데, 처음에는 천주교 전파를 막고, 막부가 무역통제를 하기 위해서였어. 무역이 빈번해지면서 상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봉건사회의 기초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어. 무역이 활발한 지역(번)의 다이묘와 상인이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었고. 천주교와 일반인의 대외 무역, 그리고 큰 배를 건조하거나 해외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어. 일본인이 배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금지했지만, 외국 선박이 일본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야. 이때 대외 창구 역할로 나가사키를 개방했어. 여기서 중국과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무역이 이뤄졌지.
에도 막부의 신분제
사·농·공·상(중국과 우리나라의 경우 사(士)는 학자를 말하지만 일본의 신분제에서 사는 무사(사무라이)를 말한다. 이 신분서열은 유교적 관념에서 본 사회에 대한 공헌도를 순위로 정하였다. 공·상은 농민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았지만 이념적으로는 무사와 농민계급에 기생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신분서열의 하위에 두었다.
사는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칼을 차고 성씨를 사용하는 것은 무사 신분을 상징하는 표식이기도 했다. 무사는 평민으로부터 권위를 손상받았을 때 목을 베어 죽이는 특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무사는 전 인구의 약 5%로, 무사 계급 내의 계층적인 신분 차는 더욱 엄격하게 규정돼 있었다. _<새로운 일본의 이해> 중
하나 에도 막부가 지배한 게 260년이 넘는데, 어쩌다 망한 거죠?
교양이 역시나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이네. ‘대한제국이 왜 망했어요?’라는 질문과 비슷하군. 조선을 개국하고 정치·경제 체제를 완비하고, 한글을 만들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풍요를 누리던 시기가 있었지만, 조선 중기를 넘으면서부터 왕과 관료의 상호 견제라는 틀이 무너지면서 권력층의 탐욕이 커져갔지. 그 결과 백성들이 살기 힘들어지면서 번성했던 정치 체제가 뿌리부터 썩어가기 시작하지. 백성들의 삶은 고달파지고, 권력 다툼은 나날이 격렬해지고, 나라밖에서는 청나라와 일본이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고. 에도 막부의 오랜 역사도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많지. 막번 체제 내부의 균열, 중국과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체제 유지가 점점 어렵게 된 셈인데…. 얘기에 앞서 교토에 있는 니조성에 대한 얘기를 먼저 들려줄게. 에도 막부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역사적인 장소거든. (▼ 니조성)

하나 앗, 예전에 교토 여행 갔을 때 가봤어요. 궁금해요!
교양이 오늘 공부한 내용을 알고 갔으면 더 감회가 새로웠을 거야. 막부시대를 연 최초의 쇼군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고 앞에서 말했지? 니조성은 에도 막부의 첫 해인 1603년, 도쿠가와가 집무도 보고 숙소로도 쓰려고 교토에 지은 성이야. 여행갔을 때 혹시 니조성의 나무 복도를 걸어봤니? 길고 긴 이 복도를 걸으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일종의 경보장치였다고 해.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보통 성은 왕의 거처를 말하는데, 쇼군이 쓰기 위한 성이라니. 과연 막부가 실질적인 권력자라는 걸 새삼 알 수 있지.
니조성이 더 유명해진 건 바로 이곳에서 쇼군(에도)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이뤄졌기 때문이야. 대정봉환은 일본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에게 위임받은 통치권한(대정)을, 되돌려준다(봉환)는 뜻이야. 에도 막부의 마지막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867년 11월 9일, 40여 명의 중신을 니조성에 모아놓고, 정권 반납을 선언했어.
하나 일본 역사의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근데 막부가 이렇게 정권을 내놓은 이유는 뭐였어요?
교양이 그 과정 자체가 역사라 자세한 설명은 어려워. 내적인 원인, 외적인 원인에 대해 뭉뚱그려서 설명하려고 해. 에도 막부는 260여 개에 이르는 ‘번’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한편, 이들을 강력하게 통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정치적으로 거대해지는 ‘번’이 생기게 되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번을 다스리는 영주의 경제력과 권력이 커지면 막부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지. 번의 영주가 막부의 권위를 거스를 경우 봉록을 삭감하거나 번을 교체하거나, 심하면 영주 가족을 인질로 삼아 에도에 살게 하기도 했어. 에도 시대 후기로 갈수록 번의 영주와 막부 사이의 긴장이 더 심해졌지.
에도 막부 후기에 외부의 바람도 달라졌어.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유럽의 열강들은 한창 제국주의 확장에 열을 올렸는데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이 동북아시아까지 이르렀어. 영국은 네덜란드가 장악했던 말라카 해협을 빼앗아서 중국과 인도, 나아가 일본과도 교역을 시작했어. 북방의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 않았지. 결정타는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이었어. 동북아시아의 대국 중국이 이 전쟁에서 패배해 영국은 중국에 군사적, 경제적 거점을 마련하게 돼. 이 전쟁에 일본은 큰 충격을 받았어. 이렇게 있다가는 영국이 자신들을 나라를 침략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됐지. (▼ 대정봉환)

하나 에도 막부가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던 거군요.
교양이 아까도 말했지만, 점차 힘을 얻은 지방의 번주들도 감당하기 어렵던 때였는데 나라밖의 외압이 커지자 대응할 힘이 부족했지. 더군다나 미일화친조약(1854년)에 이어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과 연이어 굴욕적인 통상조약을 맺는 걸 보면서 번주들이 강력하게 반발했어. 개항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 곳에서는 훨씬 저항이 심했고.
근대화된, 중앙집권적인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압박을 받자 일본 내부에서도 막번체제로는 외세에 대항할 수 없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었어. 번은 연방제적인 성격이 컸고, 상징적이라고 해도 천황이 있고, 쇼군이 있으니 권력이 분산돼 있는 셈이었지. 점점 조정과 막부의 이원체제를 일원화해서 외세에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어. 천황을 다시 높이 세우고(존황론 尊皇論), 막부를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졌지. 결국 궁지에 몰린 막부는 니조성에서 대권을 넘겨주기로 한 거야.
하나 드디어 에도 막부가 막을 내리면서 메이지 시대가 열린 거네요?
교양이 에도 막부가 천황에게 권력을 넘겨주겠다고 했을 때 속셈은 있었어. 막부가 실질적인 권한을 쥐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존황파의 반발로 결국엔 패하게 되었고, 1868년 메이지 정부가 수립되었지. 1867년, 천황이 된 일본제국의 122대 메이지 천황의 연호를 따서 메이지유신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왕정복고에 힘을 주었지만, 점차 구습파타를 외치며 근대화 정책을 추진해 나갔어.
메이지유신은 이 일련의 과정을 이르는 말이야. 근대 자본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개혁이었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신분제를 폐지했으며, 전국 화폐단위를 통일하고, 시민의 거주 이전 및 직업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하며, 징병제를 실시하고 산업화 정책 등을 펼쳐나갔어. 1889년에는 헌법을 발표했고. 이 시기 동안 일본은 산업화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의 토대를 다져, 마침내 주위의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아 강대한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기에 이르렀어.
메이지유신이 종료된 시기가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게 우리한테 뭐가 중요하겠니? 어찌됐든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먼저 산업화, 근대화, 자본주의화의 길을 걷게 됨으로써 조선이 그들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뼈아플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