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는 말이 없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세상은 변해간다. 한때 사계절이 고르게 교차하던 한반도인데 이젠 장마와 무더위, 가뭄과 폭설이 예측 불가능한 리듬으로 뒤섞이게 됐다. 2025년 봄, 서울의 하늘은 유리창처럼 맑았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 얼마나 심각한 위협이 숨어 있을지 알길이 없다. 평년 대비 30% 이상 떨어진 습도, 찾아오지 않는 봄. 이는 단순한 계절적 변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후 체계 자체의 균열이다.
2025년 대한민국 기상청은 이례적으로 이상기후 예보를 발표했다. 여름은 예년보다 1.5°C 더 높을 것이라 예상했고, 열대야 현상은 전국적으로 30일 이상 지속될 것이라 예측했다. 강원도와 경북 내륙 지역은 평균 강수량이 40% 이상 감소하고, 가을철 태풍은 더 빈번하고 강력해질 전망이다. 단순히 숫자로만 표현되었지만, 이 기후변화들이 초래할 위협은 전방위적이다. 농업, 수자원, 에너지 수급, 심지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한다. 당연히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세계는 이미 10년째 전례없는 더위를 겪고 있으며, 극단적인 기상현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 12월 30일 “2024년 기후변화의 여파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전 세계 산과 바다 깊은 곳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며 “온실가스 수치는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계속 증가”하고 있어 2025년에도 기록적인 더위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지구온난화는 한 마디로, ‘열은 들어오는데 나가지 못해서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는 현상’이다. 이때의 열은 태양에서 지구에 도달한 태양열이다. 인간활동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온실가스가 두터운 담요가 되어 이 열을 대기 속에 가둬 지표면에 머물며 지구 평균 기온을 점점 올리고 있다. 이 열기가 숲과 강, 들판을 조여든다. 생명의 근원이던 태양은, 이제 때때로 생명을 위협하는 불덩이로 변모했다. 건조한 대지는 갈라지고, 강은 흐름을 멈춘다. 남미 아마존은 2024년 기록적인 가뭄으로 강 수위가 5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북미 서부에서는 산불 시즌이 한 달 이상 앞당겨졌다. 아시아, 특히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지고, 봄과 가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 을지로의 한 노점상은 말했다. “올해는 봄 장사가 아예 없었어요. 봄이라고 부를 날씨가 없었으니까요.” 기후 변화는 이렇게 일상의 작은 틈으로 파고들어, 생계를 흔들고 사람들의 숨결을 바꾸고 있었다. 2024년의 봄, 경상북도 영주에서는 복숭아 개화 시기가 2주나 빨라졌다. 그러나 따뜻한 봄을 즐길 겨를도 없이, 초여름 폭염이 덮쳐 수확량은 30% 감소했다. 자연의 시간표가 뒤틀리자, 인간이 세운 시간의 질서도 무너지고 있었다.
기후변화는 단지 더운 여름과 따뜻한 겨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태계 전체의 재편성이다. 나비가 사라지고, 작은 풀꽃들이 피지 않고, 나무들은 물 부족에 지쳐 간다. 어떤 종은 살아남고, 어떤 종은 사라진다. 숲은 타오르고, 들판은 메마른다. 그리고 인간 사회 역시 이 변화의 한가운데서 흔들리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가 계속 됐지만, 인류는 그 위험성보다는 달콤한 현실에 안주하기를 택했고, 그 결과 기후재앙을 막는 마지노선이라고 불리는 ‘1.5°C 선’마저 벌써 뚫려버렸다. 지난 2015년 12월, 파리에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체결했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담은 합의안으로, 흔히 ‘파리기후협약’이라고 부른다. 이때 연간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이내로 억제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산업혁명 이전 대비 현재 지구 온도는 대략 1.2~1.3°C 상승했는데, 최근 5년 평균(2020~2024)으로 볼 때는 이보다 높게 나오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2024년 지구온도가 1.55°C 오른 시기가 있었다며 ‘1.5°C 마지노선’이 결국 무너졌다고 밝혔다. 《2050 거주불능 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2100년까지 기온 상승을 2°C 선에서 막는다고 하더라도 살인적인 폭염에 노출되는 사람은 세계 인구 2분의 1로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재 온난화 수준이 기후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경고선일 수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와 산불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기후변화가 ‘직접적으로’ 산불을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산불은 자연재해도 있지만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한다. 그런데 지구 온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 건조한 날이 더 많아짐에 따라 ‘산불 날씨’가 악화될 수 있다. 과학지식이 얕더라도 날씨가 덥고 건조할 때 화염이 쉽게 번진다는 건 알고 있다. 실제 기후변화로 세계적으로 산불 발생 기간이 평균 2주 가량 길어졌다.
불이 타오르는 건 산소의 반응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지만, 사실 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진짜 이유는 지구 대기 중 산소가 차지하는 상대적인 비율이 “딱 알맞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기 중 산소 농도가 15% 이하로 떨어지면 불이 지속되기 어렵다. 그리고 산소 농도가 35%이상이 되면 저녁 식탁에 촛불도 함부로 켤 수 없다. 현재 대기 중 산소 농도는 21%에 조금 못 미치는데, 이는 인간이 살아가고 번성하기에 딱 알맞은 농도이자 불이 인간에게 아주 유용하게 쓰일 만큼 지속될 수 있는 골디락스 영역에 해당한다. 발췌_《파이어웨더》
기간이 길어지고, 불길이 커지고, 진화가 어려운 산불이 반복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토양과 생태계가 파괴되고, 숲을 잃어 탄소흡수원이 줄어들면서 온실가스 농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높아진 온도는 다시 기후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산불은 더 쉽게 발생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는 말이 있다. 어떤 변화가 임계점을 넘어설 경우, 한 번에 급격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드는 지점. 산불도 기후위기로 인한 위협도 점점 티핑포인트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두려움이 조금씩 커져간다. 인류는 과연 탄소 배출을 줄이고, 파괴된 숲과 습지를 복원해, 종말로 치닫는 기후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현실적인 두려움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골디락스(Goldilocks)”는 영국 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에서 나온 말이다. 이 동화에나오는 소녀 골디락스는 곰 세 마리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좋은” 죽,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맞는” 의자, 너무 딱딱하지도 푹신하지도 않은 “딱 좋은” 침대를 찾아낸다. 이처럼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고, 딱 좋은 상태’를 골디락스라고 표현하게 됐다. 과학에서는 이 의미를 빌려와서 ‘골디락스 영역(Goldilocks zone)’, 즉 생명이 살기에 딱 좋은 조건이나 범위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