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의 분쟁에서 지정학적인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은 편이다. 지정학적이란, 지리적인 조건과 경제가 국가 간의 정치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뜻하는 말이다. 남중국해(The South China Sea)를 둘러싸고 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남중국해가 어디 있는지 지도에서 찾아보자.
태평양의 일부인 남중국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와 면해 있는데,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바다다. 무엇보다 서태평양과 인도양, 페르시아만을 잇는 주요 선박들이 교역을 위해 남중국해를 통과하는데, 물류량이 연간 5조 달러 규모이다. 해상 수송로의 핵심 해역인 만큼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중국은 2014년부터 남중국해 해양 지형들에 인공섬을 건설해 군사 요충지로 활용하고 있다. 필리핀 해군 대변인은 2024년 8월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 안팎에서 암초 등을 매립해서 넓힌 땅 면적이 30㎢에 이른다면서 이는 ‘서서히 진행되는 침략’이라고 못박았다. 이밖에도 남중국해는 전 세계 어족 자원의 12%를 보유하고 있으며, 원유 및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해 연안 국가들의 시추 활동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배타적경제수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 수역 안에 들어가는 바다. 연안국은 이 수역 안의 어업 및 광물 자원 따위에 대한 모든 경제적 권리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며, 해양 오염을 막기 위한 규제의 권한을 가진다.
가장 붐비는 해로인데다 꽤 넓은 바다인 남중국해. 문제는 중국이 오래전부터 남중국해의 대략 85% 가량에 대한 영유권[1]을 주장하면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80~90%를 차지하는 수역 주변으로 구단선(九段線)을 설정한 후 역사적 근거를 내세우며 이 구단선 안은 중국의 바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남해구단선). (지도_구단선(빨간색)과 각국의 200해리)
이로 인해 필리핀은 현재 심각한 군사적 압박을 받고 있다. 필리핀은, 미스치프 암초와 존슨 암초에 중국이 활주로와 군함 정박용 부두, 항공기 격납고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만들었으며 군용 통신장비가 있다며 이미 군사기지가 됐다고 평가했다. 미스치프 암초와 존슨 암초는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에 속해 있다. 이런 상황이라 남중국해에서 두 나라의 물리적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어떻게 봐야 할까?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2016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중재재판소(PCA) 판결로 법적 근거를 상실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3년 1월, 필리핀 측 배타적경제수역에 포함된 스카버러 섬(중국명 황옌다오) 근처에서 조업하고 있던 중국 선박에 필리핀이 퇴거 요구를 했지만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필리핀은 PCA에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해 정식으로 제소했고, 2016년 7월 12일, PCA는 3년 반 만에 법적으로 남중국해에 대해 중국의 영유권이 없음을 선고했다.
남중국해 분쟁은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갈등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영토분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때의 영토분쟁은 ‘해양지형에 대한 주권을 어떤 국가가 보유하는가의 문제’이다. 당시 소송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중국 측에서 남중국해 중 85%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해9단선과, 중국이 만든 ‘인공섬’에 영유권이 있는가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수역을 다투는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남중국해 내 군도다. 당시 PCA 판결의 핵심은 중국-필리핀 사이에 있는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가 섬이냐 바위냐의 문제였다. 스프래틀리 제도를 섬이라고 볼 경우, 중국-필리핀 간 분쟁 지역은 중국 영해가 된다. 하지만 PCA는 스프래틀리 제도를 섬이 아닌 바위로 간주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수역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남해9단선의 효력은 물론, 중국의 인공섬에 대해서도 중국에 영유권이 없다.
남해구단선: 1947년에 설정한 남중국해 해상 경계선. 이 안에는 프라타스섬, 파라셀 제도, 스카버러 암초, 스프래틀리 제도가 포함돼 있다. 중국은 구단선 안에 있는 스프래틀리 제도와 파라셀 제도는 물론 그 수역에 대해 역사적 권리를 보유해왔다며, 국제법상 어떤 영토를 지배해왔음을 입증하면 해당 지형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기도 하므로, 자신들에게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해 영유권이 있음을 주장하면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권리 주장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가야 할 만큼 오래된 역사라 너무 복잡해서 설명을 생략했다. 중국은 국제법상 옛날부터 어떤 영토를 지배해 왔음을 입증하면 그곳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는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해양지형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조금 더 복잡하다.
남중국해의 해안지형이 간조노출지냐, 암석이냐, 섬이냐에 따라 영유권 귀속과, 주권국이 보유하는 권리의 종류 등이 달라지는데 남중국해 분쟁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먼저 바다에서 늘 물에 잠겨 있는 수중 암초는 아무 권리가 없다. 그렇다면 밀물일 때는 물에 잠겼다가 썰물일 때 물 위로 드러나는 간조노출지는 어떨까? 국제법상 섬이 아니고, 연안국의 육지 영토로도 인정받지 못한다. ‘섬’은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는 해안지형으로, 밀물일 때도 수면 위에 있는 육지를 말한다. 섬의 경우에는 영해, 접속수역, 배타적경제수역, 대륙붕[2]을 모두 가진다. 한편 섬 중에서 인간이 살 수 없는 섬은 ‘암석’이라 하고, 유엔해양법협약에서는 암석은 배타적경제수역과 대륙붕을 갖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6년 남중국해 분쟁에서 PCA는 이 문제와 관련해 지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당시의 판결은 분쟁 당사자(필리핀과 중국)에 대해서만 구속력이 있고, 다른 국가들에게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며, 강제력 또한 없어서 지금까지도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남중국해가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에다 어족을 비롯한 천연자원의 보고이니, 이 지역에 대한 권리 다툼이 치열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중국은 당연히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위해, 인공섬을 건립해 군사기지화하는 일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 의해 태평양 진출이 차단된 중국군 입장에서 남중국해는 핵잠수함 등을 태평양으로 진출시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핵심적인 통로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핵심이익’으로 규정해 왔고, 이 요충지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 인공섬을 만들고 있다. 또한 심해 자원 채굴을 위한 준비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의 영유권 분쟁도 문제지만, 이 갈등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번질 기세다. 미국 입장에서도 남중국해는 포기하기 어려운 전략적 요충지여서,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의 자유로운 개방을 위한 것이라는 이념을 앞세우며 중국의 대외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남중국해에 전투함을 진입시켜 매일 작전 수행을 하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사이의 갈등이 커지면서 우리나라 역시 중립을 지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드 설치 확정 등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우리나라의 외교 상황이 더욱 꼬여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항행의 자유 및 상공 비행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국제법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 굳건하게 지켜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