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 지금은 수많은 상품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유통된다. 하지만 산업혁명(근대) 이전에는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물건이 많지 않았다. 소금이나 후추, 향료, 염료 외에 흔히 기호식품이라고 하는 커피와 차, 담배, 술 정도였다. 물론 설탕도. 이 중에서 남녀노소 모두 이구동성으로 좋아할 만한 걸 꼽으라면 단연 설탕이다. 커피나 차는 쓰고 떫은 맛이 나고, 술이나 담배도 모두가 즐길 수 없지만, 하얗고 반짝거리는 달콤한 설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좋아할 수 밖에 없는 품목이다.
단맛, 즉 감미료로는 꿀, 캐나다의 단풍나무 시럽 메이플(maple)이 있지만, 세계적인 상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것은 사탕수수와 사탕무밖에 없었다. 설탕의 역사는 약 2500년 전 인도에서부터 시작됐다. 고대 인도에서는 사탕수수에서 즙을 짜낸 다음 졸이고 증류하는 방식으로 설탕을 만들었고, 이를 ‘사카라(sarkara)’ 혹은 ‘사르카라(sarkara)’라 불렀다. 이는 오늘날 영어 단어 ‘슈가(sugar)’의 어원이기도 하다.

설탕은 과일이나 채소처럼 자연에서 난 것을 그대로 채취한 게 아니다. 따라서 설탕의 전파는 설탕을 실어나르는 단순한 무역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설탕의 흐름이 세계사의 한 흐름을 형성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설탕은, 사탕수수의 재배부터 정제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기술 체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탕수수 줄기에서 즙을 짜내 가열해 시럽을 만들고, 이 시럽을 덩어리로 굳혀 사용했는데, 이를 원당(原糖)이라고 한다. 이 기술은 고대 인도에서 비롯됐다.
인도의 설탕 제조술이 지중해 연안의 유럽과 그밖의 지역으로 전파된 것은, 이슬람 제국에 의해서다. 7세기 초 탄생한 이슬람교는 인도를 비롯해 중동과 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확장됐고, 8세기 초에는 이슬람 제국을 세웠다. 이슬람 제국은 인도와 페르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등 광범위한 지역을 통치했고, 설탕 재배와 정제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설탕을 약용, 향신료, 장식용 식재료로 활용했고, 아라비아 상인들이 이를 지중해 지역으로 전파하면서 유럽에 설탕이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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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군 전쟁은 매우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역사적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1095년~1291년), 여덟 차례에 걸쳐서 서유럽의 기독교도들이 이슬람 진영에 있는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감행했던 대원정’ 정도로 이해하자. 무려 200여 년을 이끈 이 전쟁에서 주목할 것은 유럽과 동양의 교류가 매우 확대됐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