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국문과 CC였고, 그래서 내 주변엔 늘 어려운 책들이 많았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보냈는데, 물론 제대로 이해하고 읽지는 않았다. 그 책들은 왠지 세상의 무서운 비밀을 담고 있을 것 같은 기운을 풍겼다. 수염을 잔뜩 기른 무서운 작가들의 얼굴이 인쇄된 책들은 어린 나에게 지적 허영과 환상을 심어주었다.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읽는 걸 ‘연기하는 것’에 심취해 있었다. 다섯 살 때 처음 《해리포터》가 나왔는데, 내용도 못 따라가면서 읽는 척하기도 했고, 초등학생 때에는 일부러 ‘있어보이는’ 책을 학교에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자라면서 그 책들이 가진 의미와 힘을 조금씩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점점 더 고전 문학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취향이 형성되고 나니까 요즘 문학, 특히 한국 문학에 대해 거의 무지했고, 잘 읽지도 않았다. 내 독서 취향의 출발은 어쨌든 문화 사대주의와 허영이었으니까, 그 잔재가 계속 남아 있었다.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그런 게 피곤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현대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
다. 그리고 그 안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치열한 고민과 열정이 있었다. 어쨌든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니까, 나의 일부가 한국 문학에 담겨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새 시대에는 새 문법이 필요하고, 옛날 글들이 다루는 주제의 깊이가 더 깊고 어렵다고 해서 반드시 그게 더 좋은 글이라는 뜻은 아니다. 애초에 절대적인 ‘좋은 글’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성해나의 《혼모노》는 이런 생각들을 하는 와중에 만난 작품이다. 아빠가 집에 책 몇 권을 소포로 보냈는데 그 책들 중 한 권이었다. 집에 세탁기가 없어서 주기적으로 빨래방에 가곤 한다. 빨래를 돌리는 동안 빨래방 한켠에서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놓고, 어느 날, 《혼모노》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