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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톺아보기

병자호란 <1>

‘명분과 실리의 대립’이 만든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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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금,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군신 관계 요구

정묘호란(1627년)으로 조선과 후금은 ‘형제 관계’를 맺고 외교의 물꼬를 텄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후금으로서는 정묘년의 협약을 통해 조선이 최소한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적절한 외교적 중립을 지키기를 바랐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조선은 여전히 명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는 주전파(후금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세력)들이 득세했고, 후금에 대해서는 오랑캐라는 인식을 벗지 못했다.

심지어 명과 후금, 두 나라 사이에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는 걸 알면서도 조선은 “요동의 군이 부족하니 조선이 말과 군량을 보내라”라든가 “후금과 싸우는데 조선이 출병을 약속해야 한다”는 명나라의 요구를 은밀히 들어주고 있었다. 거꾸로 후금의 요구에는 갖은 이유를 대며 실행을 미루거나 거절하고, 요구를 듣는다더라도 마지못해 응하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할 후금이 아니었다. 더욱이 명나라와의 긴 전쟁을 승승장구하며 이미 요동·심양·몽골 지역을 거의 제압한 후금으로서는 조선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할밖에.

대륙의 패권을 눈앞에 두었다고 생각한 후금의 홍타이지는 마침내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우두머리라는 뜻을 지닌 ‘한(汗_중국 변방 민족의 우두머리를 가르키던 말)을 버리고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나라의 장수 용골대와 마부대를 앞세운 사신을 보내 조선에게도 그동안의 형제 관계를 군신 관계로 바꿀 것, 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할 것을 요구해왔다.

조선은 강경했다. 왜란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았던 명나라와의 의리를 결코 저버릴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권력의 핵심을 이루던 주전파 대신들의 반발은 물론이고, 인조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사(三司_홍문관, 사간원, 사헌부를 함께 일컫는 말)를 비롯해 성균관의 유생들까지도 척화를 요구하는 상소가 잇달았다. 사신의 목을 베어 그들의 주장을 거절할 것을 주장하는가 하면, 이런 결단이 나라가 망하더라도 명분이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홍문관이 올린 상소에는 이런 대목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