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어느 날, 소설 〈소나기〉를 쓴, 소설가 황순원은 지인과 시외버스를 타고 어느 지방에 가서 이것저것 관찰을 시작했다. 그날 그곳에서 보고 온 내용은 소설에 쓰였다. “개울 다리를 건너 얼마가지 않아 오른쪽에 경찰서가 나타나고 그 바로 옆에 병원이 있었다.”(소설 《일월》) 우리는, 이런 내용쯤은 굳이 현장에 가보지 않아도 대략 짐작해서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작가는 하루품을 들여서라도 확인을 하는 엄밀성을 보여주었다. 이런 소설을 사실성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부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까지 모두 사실성 있는 소설들이다.
그런데 SF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은 어떨까? 당연히 이 소설들에 사실성은 없다. 하지만 재미있다. 어떤 성질이 이 소설들을 재미있게 만들까? ‘개연성과 핍진성’이라는 개념에 주목하자.
개연성은 ‘실제로 일어날 법한 성질’을 뜻한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이 그날 번 돈으로 술을 사먹다가 만취해서 잠이 들었다고 하자. 이는 가능한 일이다. 개연성이 있다. 그런데 이 주인공이 갑자기 폭탄을 사서 조선총독부에 던졌다면?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말은 개연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층민인 주인공이 이렇게 돌변한 이유를 소설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해리포터》가 사실성이 전혀 없는 소설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해리포터는 항상 정의롭고 친구들을 위하는 캐릭터다. 만일 이런 특징이 깨져버리면, 개연성도 함께 사라진다. 예를 들어 갑자기 해리포터가 친구들을 배신하고 볼드모트의 편이 되어 친구들을 공격한다고 상상해보자. 소설을 읽을 맛이 전혀 안 날 것이다. 이렇듯 개연성은 소설의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성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