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우리는 흔히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유전자는 건물의 형태를 규정하는 설계도에 비유되곤 하죠. 그렇다면 우리의 얼굴과 운명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확정된 도면일까요?
최근 인공지능(AI)은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키, 질병 위험, 심지어 외모까지 예측하려 합니다. 이런 시도들은 ‘생명은 설계도대로 구현되는 기계’라는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발생학의 세계로 한 걸음만 들어가 보면, 이 비유가 얼마나 거대한 오해인지 알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수정란이라는 단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이 작은 세포 안에는 뇌의 입체적인 그림도, 심장의 복잡한 도면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오직 유전자뿐입니다. 유전자는 세포에게 ‘자, 이제 코를 만들어’라고 직접 명령하지 않습니다.
대신 유전자는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에 대한 ‘범위’를 제시합니다. 마치 악보가 연주자에게 음표를 제시하지만, 실제 선율의 질감은 연주자의 해석과 공연장의 울림에 따라 결정되는 것과 같습니다. 생물학에서 발생(Development)이란, 이 범위 안에서 세포들이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시간과 위치에 따라 스스로 형태를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과정을 뜻합니다. 즉, 생명은 설계도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스스로를 ‘조정’하며 자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