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만큼 직관적인 꽃 이름은 없는 것 같다. 늦여름 들판의 해바라기는 무거운 씨앗을 가득 품은 채 해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한 곳만 바라보면 다른 곳은 덜 자라거나 기울고 만다. 인간사회는 셀 수 없이 많은 문제를 품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인류는 축적된 지적 자산을 총동원한다. 이렇게 찾은 대안, 혹은 해결책들은 기울어진 해바라기처럼 이면에 다른 문제들을 감추곤 한다. 첨단 과학기술을 총동원한 미래식량은 분명 기후위기와 식량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식량 역시 그 이면에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들을 숨겨두고 있다.

‘기후와 식량’이라는 관점으로 영화들을 떠올리니 그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디스토피아 영화 <설국열차>(2013년)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기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빙하기를 맞이한 인류는 영원히 달리는 열차에 갇혀 산다. 머리칸은 호화롭게 살고 꼬리칸은 참혹한 빈곤 속에 산다. 영화는 꼬리칸이 일으킨 반란 이야기다. ▶ 영화 <설국열차>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경악한 대목이 있다. 꼬리칸 사람들에게 배급되는 유일한 단백질 블록. 주인공은 거대한 바퀴벌레로 만들었음을 알게 된다. 머리칸 쪽 사람들의 상황은 완전 딴판이다. 수족관에는 생선이 노닐고, 온실에서는 신선한 채소가 자라고, 고기를 곁들여 와인까지. 극단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시사점이 명확히 보인다. 식량위기가 닥치면 불평등의 문제는 더 크게 불거져 나올 것이다.
얘기가 너무 옆길로 새버렸다. 원래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곤충으로 만든 단백질 바다. <설국열차>에서처럼 바퀴벌레 단백질 바는 너무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위생적으로 영양가를 충분히 고려해 만든 미래식량 ‘곤충 단백질 바’를 먹는 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