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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세계사

화번공주

"평화를 삽니다"

역대 중국 왕조마다, 나라의 평화를 위해 정략적으로 이민족 지도자의 신부가 된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을 ‘화번공주(和蕃公主)’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공녀’가 있었기에,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역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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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는 한족(漢族)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족은 수차례 중원(中原)을 차지하며 중국 역사의 중심에 있었지만, 변방의 이민족들이 중원을 노리곤 했으며, 몇몇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중원을 위협하기도 했다.

한족 왕실은 종종 그들과 대결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과의 화친을 도모하기도 했다. 늘 무력 대결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건 양쪽 모두에게 국력 소모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이를 좀 더 매끄러운 관계로 포장하는 방법은 바로 ‘가족이 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여러 중국 왕조에선 정략 결혼을 매개로 이민족과 화친을 맺었다. 어떻게 보면 비교적 손쉽게 평화를 사는 셈이다.

비극의 주인공일까, 평화의 사자일까

가장 널리 알려진 화번공주는 한 원제(元帝, 기원전 76년~기원전 33년) 때의 왕소군(王昭君)일 것이다. 많은 시와 설화를 통해, 그녀는 나라를 위해 낯선 땅으로 가야 했던 ‘비극의 미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명은 왕장(王嬙), 원래는 왕실의 궁녀였다. 왕소군은 미모는 물론, 가무 실력 또한 뛰어났다. 그 덕분인지 그녀는 왕실의 악부(樂府, 노래와 시를 수집하는 관청)에 의해 궁녀로 발탁된다. 그런데 문제는 초상화였다. 황제는 궁녀를 실물이 아닌 초상화를 보고 판단하는 버릇이 있었다. 워낙에 입궁하는 궁녀 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궁녀들 사이에선 궁정화가에게 뇌물을 주고 실물보다 예쁘게 그려달라고 하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화가는 그 관습대로(?) 왕소군에게도 뇌물을 요구했다. 하지만 왕소군이 뇌물을 주지 않자 화가는 그녀를 뺨에 점이 크게 찍힌 추한 외모로 그려버렸고, 왕소군은 황제의 그림자조차 만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