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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톺아보기

서양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두 괴물,

쇄국과 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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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열강의 먹잇감이 된 아시아

조선 후기 순조-헌종-철종으로 이어지는 60여 년은 안팎으로 위기의 시간이었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몇몇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왕권은 바닥에 떨어졌고, 돈으로 벼슬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판을 쳤다. 세금 제도라 할 삼정은 완전히 타락해, 토지가 없는데도 장부를 조작해 세금을 거두는 백지징세,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내게 하는 백골징포, 갓난아기에게도 세금을 부과한 황구첨정 같은 말이 흔할 정도였다. 혼란한 세상과 무거운 세금을 버티지 못한 백성들은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민란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외적의 침략이 아닌데도 이렇게 조선의 근간이 흔들리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

나라 바깥의 사정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명나라 이후 대륙의 맹주로 부상한 청나라는 두 번의 아편전쟁(제1차 아편전쟁 1840년~1842년, 제2차 아편전쟁 1856~1860년)으로 수도인 베이징마저 침략당하고, 황제가 러허(열하熱河:우리에게는 박지원의 중국견문록 《열하일기》로 익숙한 지명. 청나라 황실의 여름 별궁이자 요새였다)로 피난까지 했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이듬해 그곳에서 죽었다.

이 아편전쟁의 영향으로 청나라는 조약을 통해 항구를 개방하게 되고, 홍콩을 비롯한 국토 일부를 영국에 넘겨주기도 한다. 러시아가 연해주 일대를 차지하게 된 것도, 외국인만을 위한 거주지역인 조차지가 개설된 것도, 선교사의 포교를 허용한 것도 모두 이 사건의 여파다. 청나라로서는 철저히 불평등한 조약이었지만 어쩌지 못했다.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은 각종 시험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건이다. 여기서는 안타깝게도 자세히 다루지 못하니 각자의 방식으로 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다)

비슷한 시기인 1853년, 일본 에도만 입구에 미국의 함대가 나타났다. 증기선이 내뿜는 연기와 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거대한 위용의 배를 사람들은 ‘쿠로후네(흑선黑船)’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함대의 사령관 메튜 페리는 개항을 요구하는 미국 대통령 필모어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듬해인 1854년 미일화친조약이라고 부르는 가나가와조약을 통해 두 개의 항구를 개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