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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의 맛

남북정상회담의 만찬상을 장식한 평양냉면. 많은 이들이 냉면을 찾으며 평화 분위기를 만끽했지. 앞서 평양을 방문한 가수들도 본고장의 냉면을 맛보고 싶다는 소원(?)을 이뤘어. ‘진짜’ 평양냉면 맛은 우리가 아는 물냉면과 많이 다르대. 그 맛에 적응 못하는 사람도 있고, 소문난 평양냉면 전문점만 찾아다니는 마니아도 많아. 그런데 평양냉면 맛에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건 1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나 봐. 1920~30년대 평양냉면을 다룬 글을 읽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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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저(필명, 불명)

조선 사람이 외국 가서 흔히 그리운 것이 김치라듯이, 평양 사람이 타향에 가 있을 때 문득문득 평양을 그립게 하는 힘이 있으니, 이것은 겨울 냉면 맛이다.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릴 때 방안에는 바느질하며 삼국지를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만 고요히 고요히 울리고 있다. 눈앞에 글자 하나가 둘셋으로 보이고 어머니 말소리가 차차 가늘게 들려올 때, “국수요~” 하는 큰 목소리와 같이 방문을 열고 들여놓는 것은 타래타래 지은 냉면이다. 꽁꽁 언 김치죽을 뚜르고 살얼음이 뜬 진장김치국에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 풀어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 본이요, 상상이 어떻소! (‘사철 명물 평양냉면’, <별건곤> 1929. 12) 
#먹스타그램 #계절별로다른묘미 #한번맛들이면헤어나오기힘든평냉의매력


🔎 백석(1912~1996)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고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국수 삶을 때 땔감으로 쓴 목탄 냄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굳(아랫목의 방언)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속되지 않으면서도 담담하다)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의 시 ‘국수’) 
#먹스타그램 #시스타그램 #냉면은그냥국수라고도함 #어릴적식구들과함께먹던추억의맛 
#시를읽고동치미국수가땡겼다면대성공


🔎 이효석(1907~1942)

…평양 냉면은 유명한 것으로 치는 듯하나 서울 냉면만큼 색깔이 희지 못합니다. (중략) 냉면보다는 되려 온면을 즐겨 해서 이것은 꽤 맛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장국보다는 맛이 윗길이면서도 어복장국보다는 한결 떨어집니다. 잔잔하고 고소한 맛이 없고 그저 담담합니다. 이것이 평양 음식 전반의 특징입니다만, 육수 그릇을 대하면 그 멀겋고 멋없는 꼴에 처음에는 구역이 납니다. 익숙해지면 차차 나아는 가나 설렁탕이 이보다 윗길일 것은 사실입니다.
(‘유경식보(​柳京食譜​)’(유경은 평양의 다른 이름으로, ‘평양 음식의 갈래’란 뜻), <여성>  1939. 6. 게재) 
#먹스타그램 #평냉입문 #당황스러운평냉과의만남 #평양의자랑은만두


의외로 오래된 전통

확실히 평양냉면 맛은 정말 ‘아무 맛도 안 느껴질 만큼’ 심심한 맛이야. 북녘 음식은 간이 약한 게 특징이긴 한데, 같은 평양 음식이라도 특히 물냉면은 호불호가 갈리지. 그 점이 참 재밌는 음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