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아주 오래전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발로 공을 차는 놀이가 있었어. 축구의 조상격인 고대 마야의 폭타폭pok-ta-pok, 알래스카 이누이트 족의 아크라우락, 로마 제국, 중국에도 축구 비슷한 공놀이가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축국蹴鞠을 했어. 중국의 <구당서舊唐書>에도 ‘고구려 사람들은 공을 잘 찬다’는 기록이 있어. 신라의 김유신과 김춘추 역시 이 축국으로 친해졌다는 일화가 있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접하는 축구경기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해. 경기장 크기부터 경기 규칙 등, 현대 축구의 발상지가 영국이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어.
언제부터 영국에서 축구를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몰라. 영국 역사가들은 영국 축구의 시작을 약 11세기로 보고 있어. 그 옛날, 영국 땅에 살던 색슨족이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과 한바탕 전쟁을 벌인 적 있었지. 그때 바이킹 전사의 두개골을 발로 차며 논 게 축구의 기원이었대.
전설로 전해지는 얘기니 사실 여부야 알 수 없지. 그런데 중세시대의 축구는 진짜로 살벌했어. 축구보다는 패싸움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만큼 피를 부르는 경기였지. 인원수는 최소 20~50명이었고, 규칙도 딱히 정해진 게 없어서 공보다는 상대방을 걷어차는 일이 빈번했어. 영국 전역에서 마을 단위로 격렬한 축구경기가 벌어지다 보니 부상은 예사. 국왕 명령으로 축구를 금지할 정도였어.
“사회적 폐해가 많은 축구경기를 법으로 금지하며, 이를 어기는 자는 벌금 또는 징역형에 처하노라.”
법으로 금지하거나 말거나, 축구경기는 계속 벌어졌고 갈수록 난폭해졌어. 게다가 축구가 중간 계층이나 농한기의 농민을 중심으로 확산되다 보니, 사회 상층부나 성직자 중에서는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어. 심지어 ‘축구나 하는 자’라는 표현이 상대를 욕할 때 쓰일 정도였다고 해. 하지만 비단 축구 경기에서만 피를 본 건 아니었어. 19세기 이전의 영국 스포츠는 잔인한 게 많았거든. 심지어 동물을 학대하는 스포츠도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