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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서점, 책쾌

오늘도 서점에는 신간이 여러 권씩 쏟아져 나와. 책을 사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책을 구하고 읽을 수 있어. 책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지금과 달리,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을 살 수 없었어. 부모님 세대 정도면 서점보다는 방문 외판원에게 책을 샀던 경험이 있을 거야. 서적 판매원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들을 ‘책쾌’라고 불렀지. 일단은 가장 유명했던 책쾌의 일화를 기사로 재구성한 글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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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수수께끼의 책쾌, 조생  

18××년 ○월호
365일 도성 곳곳을 바람처럼 누비는 이가 있다. 사계절 내내 베옷에 짚신 차림으로, 품속에 책을 한가득 지고 붉은 수염을 휘날리며 바삐 달린다. 언제든지 고객이 찾는 책을 줄 수 있도록. 하루 책 거래가 끝나면 술집으로 향한다. 책을 팔아 술 사 먹는데 쓴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애주가. 최근 들어 도성에 부는 독서 열풍을 타고 그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책을 찾는 곳엔 반드시 그가 있기에, 한양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건만, 의외로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성이 ‘조씨’라는 것 외엔. 심지어 그가 나이 드는 모습조차 못 보았다고.

베일에 싸인 그의 개인사 때문일까.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조신선’이라고 부른다. 오늘도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찾아가느라 바쁜 조생을 대신해, 그와 오랜 인연을 나눈 문인 추재 조수삼[1]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기자_  반갑습니다, 추재 선생님. 조생에 관한 글을 발표하셨는데, 선생님과 조생과의 인연이 꽤 오래됐죠?  
조수삼_ 한 40년 전이었나? 그 때 선친께서 절 위해 조생에게서 <당송팔가문[2]>을 사 주셨지요. 그 때 조생은 약 40대 정도로 보였죠. 그런데 최근 조생과 다시 만났는데, 정말 40년 전 모습 그대로였어요. 놀랍죠, 전 벌써 흰머리도 나고 손자도 봤는데.
        

기자_  항간에서 ‘조신선’이라 부르는 이유도 나이를 먹지 않아서인가요?   
조수삼_ 아마 그것도 큰 이유겠죠? 조생은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늘 서른다섯이라고 대답해요. 도교에선 신선이 되려면 육체에서 벗어나려고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렇고, 조생이 술 말고 밥을 먹는 걸 본 사람이 없어요. 언젠가 제가 조생에게 왜 밥을 안 먹는지 물었더니 불결한 게 싫기 때문이라나. 밥을 지으려면 불결한 걸 만지게 된다면서. 한번은 제가 어떻게 해서 나이 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건 약물로 되는 게 아니라 욕심부리지 말고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네요. 그러니 장수 비결에 관해 더 이상 귀찮게 묻지 말아 달라고. 허허허.
        

기자_  지상에서 책을 파는 신선이라. 
조수삼_ ‘천하의 책은 다 내 책’이라고 말하고 다닐 만큼 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요. 비록 진짜 ‘내 것’은 아니지만 자기 머릿속엔 그 책이 누구 손에 있었는지, 누가 지었고, 어느 판본이고 누가 주석을 달았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건 다 내 책이라고, 책이 없었으면 자기가 뛰어 다니거나 술을 마실 수 없었을 거라고도 얘기해요. 또 책을 팔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됐으니, 죽을 때까지 책을 사고팔 거라고 하더라고요.


조선에 불어온 책바람

조생, 그러니까 조생원은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책쾌[3]였어. 더 빨리 많은 책을 팔기 위해 지게나 보따리가 아닌 품속에 100권 가까이 품고 달리는 것부터 남다르지. 아무리 희귀한 책이라도 구해 오는 능력은 물론, 책에 ‘빠삭’하다는 책쾌 중에서도 특히 박학다식했다고. 그의 탁월한 서적 판매 능력과 기이한 행동에 미스터리한 과거까지 더해지며 ‘신선’이라고 불렸대. 당시 이름난 문인들과도 두루 교류했기에, 조수삼은 물론 정약용, 조희룡 등 많은 문인들이 그에 대한 글을 남겼어. 

조선은 학문을 숭상했지만, 의외로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어. 출판은 대개 나라에서 맡았거든. 출판하는 곳이나 서점도 많지 않았고 책값도 비쌌지. 《논어》만 해도 한 권에 쌀 두 말과 맞먹는 가격인지라 책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어. 양반들에게도 책은 귀중품이라 한 번 사놓고는 대대손손 읽었고.    

우리가 책 한 권을 사려면 인터넷에서 가격, 목차, 내용, 서평 등 다양한 정보를 알아본 뒤 사잖아. 지금보다 책이 훨씬 귀했던 시절, 이들은 인터넷도 없이 어디서 책 정보를 얻었을까? 이 역시 책쾌에게서 얻었어. 기록에 보면 책쾌는 이미 조선 전기에도 있었지.  

책을 팔려면 양반 고객에게 책을 소개하고 필요할 책을 추천해야 해. 서지정보는 물론 책 내용도 알아야 했으니 문장을 읽을 줄 알아야 했겠지? 무엇보다 고객이 소중했으니 신용이나 대인관계도 중요했어. 잘 하면 대를 이어서도 거래할 수 있으니까. 여러 사정 때문에 귀한 책을 파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걸 사들여서 다시 그 책을 찾는 사람에게 팔기도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