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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모르면《논어》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논어》에 대한 전공자도 아니면서 관련 책에 대한 글을 쓴 이유는, 설령 수박 겉핥기일망정 공자와 그의 사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양 문화권에서 살아가면서 제 것보다 서양 철학을 더 친근해하고 있다는 자각이 불현듯 들어서다. 최초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유교는 권위주의적이고 형식만을 강조하는, 지금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옛 사상인가?’ ‘공자님 말씀이지, 할 때처럼 공자는 정말 고리타분한 옛 현자인가?’

왜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소크라테스니, 플라톤이니, 칸트니, 헤겔이니 주워섬기면서 막상 동양 사상의 뼈대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은 걸까? 동양 문화권의 핵심에 유교가 자리잡고 있고, 유교 사상의 핵심에 공자가 앉아 있는데, 너무 문외한이라 무턱대고 《논어》를 읽기가 버거웠다. 그런 와중에 배병삼의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의 앞머리를 읽었는데,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는 딱 그만큼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읽기에 맞춤했다.
《맹자》 《장자》 《한비자》 《순자》 같은 고전들은 사상가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삼는다. 그런데 왜 공자의 경우는 《논어》라고 했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꼽았다.
《논어(論語)》란 ‘논하고 말하다’라는 뜻이다. 이 책의 이름이 《논어》가 된 까닭은, 물론 그 속에 그 제자들의 일화가 섞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더 본질적으로는 ‘이 책 속에는 고유명사로써 한정 지을 수 없는 위대한 진리가 담겨 있다’는 의사를 표명하기 위한 때문으로 보인다.
《논어》는 공자가 제자들과 나눈 대화와 일화를 적은 글인데, 그 속에 ‘한정 지을 수 없는 위대한 진리’가 들어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잠깐 《논어》에 대한 간략한 상식을 보태면 이렇다. 《논어》는 대혼란기인 춘추시대에 ‘인간을 중시하는 세계를 꿈꾸었던 이상주의자’ 공자의 대화록으로, 공자가 죽고 후대 교육에 힘써온 제자들과 문인들이 서술한 책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전체 스무 편으로 구성돼 있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는 이 스무 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개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