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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대기근

조선에 자연재해가 집중된 이유가 뭘까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든 강추위. 한번 추워지면 일주일 넘게 계속되다 보니 삼한사온은 옛말이란 말도 심심찮게 나와. 게다가 여름에는 40도 안팎의 폭염. 최근 몇 년 간 계절별 날씨 변화가 심상치 않지. 그런데 약 350년 전 조선에서도 날씨가 심상찮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 날씨를 뉴스로 재구성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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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년(현종 11년) 1월 22일
한양 상공에 연일 유성 출몰 “불길한 징조” 

새해 벽두부터 하늘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새해 첫날부터 나타난 햇무리와 달무리가 한 달 가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6일에는 한낮에 태백성(금성)이 나타나는가 하면, 10일에는 거대한 붉은 유성이 나타났다. 13일, 21일에도 하얀 꼬리의 유성이 나타났다.  
유성은 다른 지역에서도 목격되고 있다. 지난 9일 새벽에는 평안도 중화에 운석이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굉음을 들은 인근 지역 주민은 ‘마치 대포 소리 같았다’고 전했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지만 주민들은 불길한 징조가 아닌가 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1670년 5월 2일
[건조주의보] 역대급 가뭄, 땅만큼 타들어가는 농심 

선선한 날씨와 달리, 메마른 논밭의 땅바닥은 갈증을 호소한다. 우물과 냇가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비 한 방울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 시작되는 음력 4월은 밀과 보리를 수확하고 조, 콩, 벼 씨를 뿌리므로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다. 그런데 올해는 여름에도 냉해와 우박이 계속되며 싹도 자라지 않고, 그나마 살아남은 곡식도 타들어 가는 중이다. 예년 같으면 한 지역이 흉년이어도 풍년인 지역이 한 곳씩은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전국 8도 모두가 흉년에 애를 태운다. 곧 모내기철인데 파종은 고사하고 양곡[1]마저 걱정돼 백성들도 울상이다. 
전례 없는 가뭄은 조정 역시 한숨 짓게 했다. 현종은 2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들판이 다 타버려 밀과 보리를 수확할 수 없게 됐고 파종 시기도 놓치게 되었다. 가엾은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허물은 내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이냐’고 탄식했다. 임금은 또한 ‘경계하는 말은 마땅히 마음에 새기고 국사를 의논해 처리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즉위 이후 예송논쟁, 공주 사저 건축 논란 등 왕실 문제로 의견차를 거듭해 오던 임금과 대신들 간 정쟁이 일단락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가뭄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한편, 기우제로도 분주하다. 지난 3, 4월에 기우제를 각각 두 번씩 지낸 데 이어 곧 제5차 기우제를 드릴 예정으로, 현재까지는 조선 건국 이래 최다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1670년 10월 20일
[폭우주의보] 늦가을에도 큰비, ‘해소식’은 언제? 

또 큰비소식이 들려오며, 추운 날을 더욱 차갑게 식힐 전망이다. 강원 지역은 우박에 이른 눈소식도 들린다.      
지난 5월 말 가뭄 끝에 학수고대하던 비가 내렸지만 단비의 기쁨은 곧 비명으로 변했다. 그때부터 겨울을 앞둔 지금까지 장마가 끊이지 않고 있는 데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거센 폭풍을 동반한 큰비가 각종 수해를 몰고 왔다. 수많은 인명·재산 피해는 물론, 각종 도로 마비로 파발이 제때 도착하지 못해 교통·통신 체계까지 흔들리고 있다.       
태풍은 주로 삼남 지방을 덮쳤다. 제주도도 지난 7월 27일 초대형 태풍으로 발생한 해일에 섬 전체가 초토화되었다. 바닷물로 인해 섬 농작물 전체가 염해를 입어 도민 전체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제주 목사는 곡식 지원을 정부에 요청했고, 정부는 쌀 2000석과 벼 3000석을 제주로 긴급 운송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는 제주도에 대해 추가로 세금 경감 조치를 내렸다.      
전국이 연일 이어진 큰비와 병충해로 가을 추수를 망친 데다, 특히 올해는 남쪽 지방에 태풍이 집중되며 피해 규모가 더욱 커졌다. 이미 지난 5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아사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사망자 보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방관들이 사망자 수 공개를 꺼리고 있어 정확한 수치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소도 사람만큼 빠르게 죽어나가고 있다. 8월부터 유행한 우역牛疫으로 현재까지 폐사한 소는 약 2만 마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1671년 2월 ×일
[한파주의보] 기근·전염병에 한파까지 삼중고 “바로 눈앞이 지옥”

삼한사온이 사라졌다. 지난 한 해 계절을 가리지 않던 추위가 제철을 만나 더욱 맹위를 떨치는 중이다. 관을 파내고 시신 수의까지 벗겨 입을 만큼 가혹한 추위다. 이 와중에 북부 접경지대에서는 주민들의 월경(​越境​)과 모피의 밀렵·밀매가 잦아져, 청과의 외교 마찰이 우려되고 있다.  
전염병도 덩달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생존자들이 추위와 기근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데다 고향을 버리고 온 유랑민들이 한양에 몰리며 전염 속도는 급증했다. 시신 수습 인력도 굶주림 내지는 병에 걸린 상황. 재앙 앞에는 빈부귀천도 없다고 했던가. 조정 관료들도 수십 명씩 병으로 쓰러지는가 하면, 지난 1월에는 현종의 다섯째 누이 숙경공주가 마마천연두로 숨졌다. 저자는 시체뿐 아니라 흉흉한 소문도 가득하다. 소의 도축은 물론 인육까지 먹는다는 소문도 만연하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패륜도 일상화됐다. 임진왜란까지 겪은 한 어르신은 “그때도 전쟁에 대기근이 겹쳤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며 탄식했다. 

 

동시다발적 자연재해, 겨울왕국이 된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