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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역사에 남은 정치사상가의 치열한 삶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인 ‘한나 아렌트’.
이 영화는 아렌트의 삶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 중 하나인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따라가며 당시 아렌트의 생각과 고민, 투쟁에 가까웠던 글쓰기와 강연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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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저서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세계와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동일하지 않다. 세계는 인간들 사이에 놓여 있다.”
처음 이 문장을 보았을 때는 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한번 읽은 뒤로 이 말이 내 마음을 떠난 적은 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이 문장은 내 마음 안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형성하고 있다. 

아렌트는 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그를 ‘정치 철학자’로 부른 한 인터뷰어에게 그는 차라리 ‘정치 이론가’로 불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철학으로부터 자유로운, 깨끗한 눈으로 정치를 보고 싶어요.’ 철학과 정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철학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다. 진리와 인간의 근원적 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면에 정치의 핵심은 공존이다. 아렌트의 이런 말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를 통해서 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알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영화는 인적이 드물고 어두운 길에서 남자가 납치당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납치당한 남자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에 부역했던 그는 독일의 패전 이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신분을 위조한 채 숨어 살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비밀경찰들이 그를 납치해 예루살렘으로 데려온다. 예루살렘에서 열릴 아이히만의 재판에 흥미를 가진 아렌트는 잡지 <뉴요커>에 자신이 재판에 참석하여 칼럼을 기고하고 싶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낸다. 편집부는 당시 이미 유명한 사상가였던 아렌트의 요청을 흔쾌히 승낙한다.

아렌트는 재판 과정을 내내 갸우뚱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우선 그녀는 아이히만이 납치되어 유대인들에게 상징적인 장소인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는 것부터 의문을 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나치와 아이히만의 범죄는 ‘유대인에 대한’ 것으로 한정할 수 없는, ‘인류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좀 더 국제적인 재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