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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책장 뒤편에 숨겨진 책 한 권을 발견한다. 그 책은 홀로코스트 수용자들의 참상을 기록한 《폴란드 유대인 블랙북》으로, 아이는 책 속 사진을 보고 놀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다는 비쩍 말라 유령 같아 보이는 책 속 희생자들이 자기와 같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다. 내가 아는 유대인은 전부 뺨에 분홍빛 생기가 돌고 자신만만하며 당당한데…. 아이는 묘한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낀다. 이 일화는 저자인 수지 린필드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자는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어 사진 비평을 공부했다.
현대 사진 비평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굳건한 영향 아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인 수잔 손택(미국의 예술평론가, 극작가, 사회운동가. 1933~2004)은 1977년 《사진에 관하여》를 출간했다. 오늘날 사진비평의 기초가 되는 기념비적인 책이다. 손택은 이 책에서 사진의 위험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사진은 파국의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 원인이나 역사는 한마디도 설명하지 못하므로 사진이 과연 정치적, 윤리적으로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했다. 애비게일 솔로몬고도(미국의 사진비평가)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희생자를 나약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관념을 재생산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로 피사체를 억압하는 ‘이중의 정복행위’를 저지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