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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아랍을 만났다고?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문화는 낯선 편이지만, 중동과의 인연은 의외로 오래됐다. 
시작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는 지금보다도 빈번하게 이슬람 세계와 접촉했고, 많은 아랍인들이 신라에 찾아오거나 정착했다. 
널리 알려진 처용 설화의 주인공 처용 역시 아랍인이라는 가설이 있다. 
먼저 《삼국유사》에 실린 처용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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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제49대 헌강왕 5년(879년).
왕이 신하들과 울산에 갔을 때, 갑자기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 짙은 안개가 끼고 구름이 해를 가려 사방이 깜깜해졌다. 왕이 날씨를 알아보는 신하에게 물었더니, 신하는 동쪽 바다에 사는 용의 장난이라고 아뢰었다. 
“용을 달래 주시면 날씨가 곧 갤 것입니다.”
왕이 용을 위해 절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하자 곧 안개가 걷히며 하늘이 맑게 개었다. 얼마 후 동쪽 바다 용왕이 아들들을 거느리고 왕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저희를 위해 절을 지어주셨으니, 제 아들 중 하나를 데려다 나랏일에 쓰십시오.” 

이렇게 해서 용왕의 아들 처용은 왕의 신하가 되었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잘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부인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처용이 밤늦게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잠자리에 든 부인 옆에 다른 누군가가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처용은 상심했지만 이내 바깥에 나가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서라벌 밝은 달밤에, 밤 깊도록 놀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더라.
둘은 아내 것이고, 둘은 누구 것인가,
원래는 내 아내였지만, 빼앗긴 걸 어찌할꼬.’ 


그러자 침상에 처용의 부인과 함께 있던 낯선 이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원래 역병을 옮기는 역신으로, 처용의 부인을 보고 한눈에 반해 사람으로 변신해 부인의 침실에 든 것이었다. 그런데 부인을 뺏긴 울분을 당사자에게 돌리는 대신 감동적인 노래와 춤으로 승화하다니. 역신은 처용의 관대함에 진심으로 부끄러워졌고, 용서를 빌었다.   
“제가 나리의 부인을 넘보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나리의 초상이 있는 곳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처용은 그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다. 이후 민간에서는 액운을 막고 경사를 맞아들이기 위해 처용의 초상화를 대문에 걸었다. 왕은 용을 위해 절을 짓고 ‘망해사’라고 하였고, 구름이 걷힌 호수를 ‘개운포’라 불렀다.

아랍인도 반한 동쪽 끝, 살기 좋은 나라

《삼국유사》에서는 처용을 ‘용의 아들’이라 소개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표현이지만, 그만큼 처용을 독특한 존재로 인식해서 그랬던 것 아닐까. 정사 기록에 좀 더 가까운 《삼국사기》에도 처용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울산 지역을 시찰하던 헌강왕 앞에 처용을 비롯한 일행이 나타나 춤을 선보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선 그들을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낯선 외모와 옷차림’으로 묘사했다.

처용의 정체에 관한 해석은 다양한데, 그중 유력한 한 가지가 처용이 아랍 상인 출신이라는 설이다. 처용 설화를 기반으로 한 춤, 처용무에 쓰는 처용탈은 다른 전통 탈들과 달리 아랍인의 외모와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 처용의 실존 여부는 불명이지만, 삼국시대부터 아랍인들과 직접적 교류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각 독자적인 무역 채널을 갖고 있었다. 통일 신라 이후에는 당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서아시아의 다채로운 문화가 울산항으로 유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