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메로스>를 쓴 다자이 오사무(1909~1948)는 근대 일본 문학을 논할 때 호불호가 명확한, 그리고 극단적인 평이 오가는 작가다. 염세적이고 허무적인 시각으로 지극히 사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인간실격》을 읽고 나면 그와 그의 삶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 《달려라 메로스》의 첫 장을 읽으며 조금 어리둥절했다. 경쾌하고 빠른 이야기 전개도 그렇고, 유럽의 옛이야기에 나올 법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며 지명 등이 퍽 낯설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미지와는 꽤 거리가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달려라 메로스》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결코 식상할 수 없는 신뢰와 불신과 연관된 인간관계를 다룬다. 단순하지만 정직한 인간 메로스는 폭군 디오니스의 손아귀에 친구 세린티우스를 볼모로 두고, 하나뿐인 여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3일을 말미로 길을 떠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만, 과연 메로스와 세린티우스는 그 믿음을 지켜낼 수 있을까?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00~1948)
일본의 소설가. 고리대금업으로 성장한 신흥 자본 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는 고교 시절 자신의 집안 내력에 대한 부담과 혐오감을 갖게 된다. 그가 최초로 자살을 시도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재학 중 공산당운동에 관여하다 탈퇴. 긴자의 술집 여성과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자신만 살아남는다. 1935년 <역행逆行>이 제1회 아쿠타가와상에 입상하여 문단에 등단한다.
전후의 우울한 상황에서 자기 부정과 파멸의 길로 돌진하던 다자이는 1939년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 후 초연한 정신을 견지하며 지성과 감각과 사상이 결합된 작품을 잇따라 발표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사양斜陽>을 발표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만 1948년 <인간실격>을 집필하고, 그해 6월 야마사키 도미에와 투신자살한다.
<달려라 메로스>는 두 등장인물의 성격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갈등을 빚는다. 메로스와 폭군 디오니스의 철학은 대척점에 있다. 인간을 불신하는 폭군 디오니스와 인간에 대한 믿음이 철석 같은 메로스. 대척점에 선 둘의 팽팽한 갈등이 이야기의 원동력이다.